제36화

이무열은 김신재의 꼴을 보자 당장이라도 칼을 뽑아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아바마마가 눈앞에 있으니 함부로 날뛸 수는 없었다. 그때 강청연의 날카로운 외침에 김신재가 비몽사몽 눈을 떴다. 그런데도 손에 술병은 여전히 들려 있었고 몸은 비틀비틀, 제대로 걷는 것도 버거워 보였다. “지금 전하와 문무백관 앞에서 이게 무슨 짓인 것이냐?” 강청연은 이를 악물고 분을 삭이며 말했고 손끝은 부들부들 떨렸다. 아무리 김신재를 믿고 있어도 이 상황은 너무 위험했다. 정체도 확실치 않은 환관이 자신을 강제로 범해놓고 이 중요한 자리에서 배신까지 한다면? 혹여나 중전이 심어놓은 첩자라면? 강청연은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덕종 역시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김신재, 너는 이미 첫발을 내디뎠다. 과연 너란 자가 술에 취한 신선인지, 아니면 그저 속 빈 술통인지 이제 확인해 보겠다.” 김신재는 휘청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갔고 그 와중에도 술을 꿀꺽 넘겼다. 보는 사람 속만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이무필을 지지하는 무리들은 그 모습에 숨길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중전 민씨는 아들을 흘깃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제 세자 자리는 손에 넣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때였다. 김신재가 갑자기 술기운을 몰아내듯 힘차게 외쳤다. “한때 젊은 피 끓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한 손엔 사냥개, 다른 손엔 활을 들고, 비단 투구에 담비 털 옷을 입어 수천 기병을 이끌며 평원을 휩쓸었지요. 부친의 은혜에 보답하려 전하를 따르며 맹호를 직접 쏘아 쓰러뜨렸으니 자, 보십시오! 그 무장의 아들이 어떤 인물인지!” 낭랑한 음성에 모두 숨을 죽였고 김신재는 또 한 모금 술을 들이켠 후 조용히 멈췄다. 그는 사람들이 이 시의 뜻을 곱씹기를 바랐다. 덕종은 커다란 호랑이 가죽 옆에 서서 술기운에 취한 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 첫 구절부터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는 덕헌국의 개국 군주로서 삼십 년을 전장에서 살아온 인물이다. 이젠 늙고 병들어 활도 제대로 당기지 못하며 총애하는 숙의 정씨와도 도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