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화

왕자들과 공주들, 그중에서도 첫째 공주인 이무연은 어릴 적부터 덕종 곁에서 자랐다. 그런 이들조차 덕종이 이렇게 들뜬 모습을 본 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김신재의 시가 무슨 마법이라도 있단 말인가? 사람의 기분을 좌우할 정도라니. 동궁에 이런 인물이 있으면 이무열도 그렇게 허무하게 떠나갈 운명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무열은 그제야 희망이 보이는 듯해 서둘러 말했다. “어서 다음 구절을 읊거라! 아바마마께서 이렇게 즐거우신데 괜히 시간 끌지 말고.” “무열아, 스승님께 예의를 갖춰야지. 소부께선 지금 감정을 다듬고 계시니 재촉 말거라.” 덕종이 단호히 제지했다. “소자, 경솔하였습니다.” 덕종과 왕자들, 공주들, 그리고 문무백관까지. 백여 쌍의 눈이 모두 술기운에 취한 김신재에게 쏠려 있었다. 글이라고는 모르는 이무령조차도 분위기에 휩쓸려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제법인데? 그때 목을 안 따길 참 잘했구나.” 김신재는 모두와 함께 술잔을 비우고는 네 번째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다시 시를 읊었다. “술기운에 가슴이 시원히 트이니 귀밑머리 서리 내려도 어찌 두렵겠습니까. 부절을 지니고 옥관을 나설 그날, 어느 날이 되어야 열장을 보내시겠는지요. 휘어진 각궁을 만월처럼 당기게 하시고, 서북 하늘에 천랑을 겨누게 하소서.” “쨍그랑!” 김신재는 술병을 힘껏 바닥에 내던졌다. 그 소리에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그는 더욱 목소리를 높여 읊었다. “휘어진 각궁을 만월처럼 당기게 하시고, 서북 하늘에 천랑을 겨누게 하소서.” 덕종은 나무라지 않았고 오히려 손에 들고 있던 빈 술잔을 던지며 따라 외쳤다. “휘어진 각궁을 만월처럼 당기게 하시고, 서북 하늘에 천랑을 겨누게 하소서.” “쨍그랑! 쨍그랑!” 문무백관들도 앞다투어 술잔을 깨뜨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모두가 잔을 던졌으니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한 조장훈과 이무필도 마지못해 따라야 했다. 덕종이 앞장서 외치자 모두가 하나 되어 우렁차게 읊조렸다. “휘어진 각궁을 만월처럼 당기게 하시고, 서북 하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