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화

청월루에는 구상철만을 위한 별도의 객실과 전용 관람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가 오지 않는 날이면 그 자리는 황금빛 비단으로 덮어두었고 아무도 함부로 그 근처에는 얼씬거리지 못했다. 황색은 원래 임금만이 쓸 수 있는 색이었다. 덕종이야 그렇다 쳐도 경왕조차 그 색을 함부로 쓰지 못했는데 구상철은 그런 것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차피 경왕이 뭐라 하지도 못했으니. 그날도 장군부 친위군들이 길을 열며 외쳤다. “공주마마와 대장군님 행차이니라! 모두 무릎 꿇고 맞으라!” 순식간에 연희루 안에 모인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공주마마 만세!” “대장군 만세!” 구상철은 흐뭇한 눈빛으로 둘러보았다. 그러다 문득 2층 난간에 비스듬히 기대선 채 자신을 내려다보는 김신재를 발견했다. 그는 쓴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청연아, 전부 고개를 조아렸거늘, 저 환관만은 꼿꼿이 서 있구나. 감히 이 몸, 연제국 대장군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모양이다.” 강청연은 침착하게 답했다. “장군께서 오해하셨습니다. 덕헌국에서는 새로 제정된 율법에 따라 스승 된 자는 누구에게도 무릎을 꿇지 않아도 됩니다. 김 소부는 주상 전하 앞에서도 예를 갖추되 무릎을 꿇지는 않았습니다. 하물며 저나 장군 앞이라야...” 구상철은 눈을 크게 부릅뜨며 냉소를 터뜨렸다. “전장을 누비던 덕종도 이젠 노망이 났나 보군. 고작 글줄이나 읽는 서생에게 저리까지 대우를 해주다니.” 강청연은 억지로 웃었다. “전하께서는 문(文)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무(武)로 적을 다스리려 하십니다. 그 옳고 그름은 훗날 세상이 평가하겠지요.” 구상철은 코웃음을 쳤다. “문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무로 외적을 제압한다? 헛소리. 덕헌국도 머지않아 쇠락할 것이다.” 강청연은 미소만 지을 뿐 더는 대꾸하지 않았다. 덕종의 기개와 식견은 구상철 따위가 헤아릴 수 없는 높이에 있었다. 그녀는 이미 오랜 관찰 끝에 덕종이라는 인물을 진심으로 경외하게 되었다. 만약 자신이 이미 세자빈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이무열이 아닌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