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4화

좀 전에 박지훈은 성유리에게 전화를 걸어 송아림의 상태를 물었다. 통화 중에 갑자기 누군가가 휴대폰을 빼앗았고 곧이어 전화기 너머로 다툼 소리가 들렸다. 정영준이 서류를 가지고 들어와 말을 건네지 않았다면 박진우는 성유리에게 무슨 짓을 했을지도 모른다. 정영준은 창가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박지훈을 보고 다시 입을 열었다. “대표님?” 박지훈은 그를 쳐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말해.” “오늘 저녁 중요한 파티가 있습니다. 잊지 마세요.” “알았어.” 박지훈은 짧게 대답하고 책상으로 갔다. 정영준은 그런 그를 보고 입을 꾹 다물었다. 박지훈이 다른 곳을 볼 때 그는 재빨리 사무실을 나섰다. 성유리는 저녁 8시쯤 퇴근하려 했지만 특별한 환자가 왔다. 청각 장애인 환자인데 그녀는 수화를 할 줄 몰랐다. 다행히 진무열이 대학 시절 청각 장애인 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해서 기본적인 수화를 할 줄 알았다. 그의 도움으로 환자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환자는 성유리의 명성을 듣고 찾아왔다. 그녀의 뛰어난 의술을 전해 듣고 한방 치료로 편두통을 치료받고 싶어 했다. 성유리가 치료를 마쳤을 때, 어느덧 밤 11시가 다 되었다. 택시를 잡기 어려운 시간대라 퇴근이 늦을 때마다 차를 사고 싶은 충동이 마구 샘솟았다. 택시 앱을 켜자 멀리서 강렬한 불빛이 그녀 주변을 환하게 비췄다. 손으로 눈을 가리고 차를 바라보았는데 역광이라 차종을 알 수 없었다. 차는 그녀 앞에 멈춰 섰고 상대가 안에서 조수석 문을 열었다. 정영준이 운전석에서 내려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무 아래로 걸어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무래도 그 남자가 차 안에 있는 모양이다. 두 사람이 친밀한 관계를 맺은 후, 성유리는 그를 대할 때 왠지 모를 어색함을 느꼈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차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박지훈의 조각 같은 옆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는 고개를 살짝 돌리고 담담하게 말했다. “타.” “용건 있으세요, 대표님?” 정영준이 자리를 피한 걸 보니 그녀에게 무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