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네 남자는 아직도 심민주에게 달라붙어 그녀가 다치지 않았는지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민주야, 괜찮아? 어디 안 데었어?”
“팔 좀 보여줘, 얼른!”
“피부가 살짝 빨갛게 익었네. 약 좀 가져와!”
그 와중에 한 선원이 비명을 듣고 달려와 심지유의 몸에 붙은 불을 소화기로 급히 껐다.
“아가씨! 아가씨, 정신 좀 차리세요!”
그의 다급한 외침에 심지유는 눈을 살짝 떴다.
네 남자가 심민주를 부축하며 서둘러 선실 안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는데 그들은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심지유가 방으로 옮겨졌을 때 그녀는 고통 때문에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피부가 넓은 면적의 화상을 입어 조금만 움직여도 상처에서 진물이 나왔다.
선원은 다급히 의사를 부르러 나갔고 방 안에 그녀 혼자만 남았다.
그때 휴대폰이 진동했다.
“심지유 고객님, 구매하신 무인도 건과 관련해 추가 서류가 필요합니다.”
“지금 바로 보내드릴 테니 제발 좀 서둘러주세요... 저 빨리 들어가야 해요...”
그녀는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 순간, 뒤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랑 통화 중이야?”
유선우였다.
“아무것도 아니야.”
심지유는 얼른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이불 속에 감췄다.
문가에 서 있는 유선우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는지 눈썹을 찌푸렸다. 입을 열려던 그는 문득 심지유의 화상 자국을 보고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게 뭐야... 왜 이렇게 심하게 뎄어?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그의 목소리와 말투에 보기 드문 당황이 묻어 있었다.
심지유는 눈을 내리깔며 입꼬리를 살짝 비틀었다.
‘말해야 했을까?’
아까 그 난리 속에서 그녀가 불길에 휩싸여 비명을 질렀을 때, 유선우는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런 사람에게 왜 도와달라고 말 안 했냐니,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괜찮아.”
심지유가 담담하게 말했다.
“곧 의사가 올 거야. 넌 민주 언니한테나 가봐. 그쪽이 더 아프잖아.”
그런데 뜻밖에도 유선우는 다가와 침대 옆에 앉았다.
“민주를 걱정하는 사람은 많아. 난 여기 있을게.”
그는 그렇게 말하며 손으로 심지유의 앞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 예전처럼 다정한 손길이었지만 심지유는 미동조차 없었다. 그녀의 눈빛에 예전의 설렘이나 기대 같은 건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유선우는 이제 심민주의 남편이다. 그가 심민주와 혼인신고 했던 그날, 이미 심지유와의 인연은 완전히 끝났다.
“많이 아파?”
유선우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심지유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아프냐고? 물론 아프다. 하지만 이게 무슨 대수일까. 마음이 찢어지는 고통에 비하면 이 정도 통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곧 의사가 도착해 심지유의 상처를 치료했다. 거즈가 닿을 때마다 살이 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단 한 번도 신음을 내뱉지 않았다.
그때, 문밖에서 심민주의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우야, 얼른 나와봐! 돌고래가 나타났어! 완전 예뻐!”
유선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심지유를 부축해 일으켰다.
“같이 보러 가자.”
석양이 바다를 금빛으로 물들이고 그 위로 돌고래들이 뛰어올라 아름다운 곡선을 그렸다.
“소원 빌어야지! 돌고래한테 소원을 빌면 꼭 이루어진대!”
심민주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눈을 감았다.
심지유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마음이 텅 비어가는 걸 느꼈다.
한때 냉철하던 남자들이 지금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눈을 감고 심민주만을 위해 정성스럽게 소원을 비는 모습이라니.
심지유는 그들이 바라는 소원은 모두 심민주를 위한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그녀도 천천히 눈을 감았다.
“지유야, 너는 무슨 소원을 빌었어?”
심민주가 궁금한 듯 다가와 물었다.
네 남자의 시선이 동시에 그녀에게 향했고 심지유는 그들을 한 명씩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이렇게 빌었어. 앞으로 남은 생에 유선우, 심민혁, 심세훈, 심재민, 심민주를 다시는 만나지 않기를 바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