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5화

서예은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속으로는 정미정이 일이 있어 그녀를 불렀다고 생각하고 순순히 따라갔다. 그러나 곧 수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도우미는 정미정의 방으로 안내하는 게 아니라 정원의 인공 연못 근처로 데려갔다. 웅장한 디자인에 흐르는 물까지 더해져 장관을 이루었다. 알록달록한 비단잉어들이 물속에서 즐겁게 헤엄치고 있었다. 햇살을 받아 몸에서 찬란한 빛이 퍼져나오는 듯했다. 소문에 따르면 연못 안의 비단잉어들은 모두 상을 받은 적이 있는 고급 품종으로 색깔이든 몸집이든 하나같이 아름다워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부자들은 풍수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하는데, 박씨 가문 같은 집안은 특히 더 그러했다. 그동안 저택에 여러 번 들렀지만 최대한 빨리 적응하려는 생각에 주변을 제대로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 이제 와서 보니 제법 예뻤다. 이때, 연못 옆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서예은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 사람에게로 옮겨졌다. 예상대로 그녀를 부른 사람은 정미정이 아니었다. 서예은은 박유라를 보자 눈썹을 까딱했다. “유라 씨가 날 찾는다고 당당히 말하면 되지, 굳이 우리 시어머니까지 운운할 필요 있나?” 박유라는 눈을 가늘게 떴다. 날카로운 눈동자에 살기가 어렸고, 이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내가 찾는다고 하면 예은 씨가 과연 올까?” “아니.” 서예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박유라는 화가 치밀어 올라 가슴이 들썩거렸다. 그리고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비아냥거렸다. “장난해?” 서예은이 말했다. “오늘 뭐 잘못 먹었나? 그렇게 할 일이 없어?” 그러고 나서 몸을 돌려 자리를 뜨려고 했다. 박유라는 이를 악물고 서예은의 팔을 확 잡아챘다. “어디서 잘난 척이야. 남의 걸 뺏어 놓고 승자라도 된 것처럼 구는 꼴이 진짜 역겹거든?” 서예은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박유라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속마음까지 다 들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박유라는 이를 악물었다. “뻔뻔스럽게 희정 언니의 남자친구나 빼앗고...” 서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