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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93화

잠시 뒤, 밖이 조용해지자 진구는 몸을 일으켰고 무심한 눈빛으로 연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가도 돼.” 연하는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이윽고 진구를 날카롭게 노려본 뒤 힘껏 문을 열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진구는 벽에 기대어 서서 손으로 맞은 뺨을 쓸어내렸다. 깊은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힘은 또 왜 이렇게 세냐.” 연하는 화장실에 가서 대충 정리하고 나오는데, 문 앞에서 로운이 기다리고 있었다. 로운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유 비서가 좀 이상해요. 아까 울면서 뛰쳐나갔어요.” 연하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 쓰지 말고 본인 일에 집중해요. 대신 유 비서가 맡던 일, 손 비서가 이어받을 준비를 해두고요.” 로운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곧 상황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희윤의 거만함이 오래 못 갈 거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무너지리라곤 예상치 못했다. 다만, 정확히 무슨 이유로 잘리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오후에 연하는 고객을 만나러 간다고 나갔다가 퇴근할 때까지 회사로 돌아오지 않았다. 밤늦게 집에 들어온 연하는 술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었다. 이윽고 가방을 던져두고 소파에 주저앉아, 베개를 끌어안은 채 그대로 잠들고 싶었다. 몸도 지쳤고 마음은 더 지쳐 있었다. 문득, 내가 왜 이곳으로 돌아왔을까 하는 회의감이 밀려왔다. 그때 전화가 울리자 화면을 본 연하는 폰을 귀에 가져갔다. “엄마.” 주설주의 목소리가 걱정스럽게 들려왔다. [왜 이렇게 피곤한 소리가 나? 설마 지금 막 퇴근한 거 아니지?] “아니에요.” 주설주는 딸에게 쉬라고 당부하다가 다시 물었다. [연하야, 맞선 얘기 다시 생각해보면 어때? 옆에 함께할 사람이 있으면 네가 이렇게 힘들지 않아도 돼. 너희 아빠랑 나도 마음이 한결 놓이고.] 연하는 늘 반감만 들던 얘기였지만, 오늘 하루를 떠올리니 묘한 충동이 밀려왔다. 이에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알겠어요. 언제, 어디서 만날지만 알려주세요.” 주설주는 깜짝 기뻐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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