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34장

이 청동 약정은 원래 안연철의 보물이었는데 지금은 구수한 향기와 함께 일곱 빛깔 안개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천후는 공작 성녀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안연철에게 이것을 빌렸고 그 속에서 끓고 있는 약재는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공작 성녀의 흰 비단 옷엔 아직도 핏자국이 스며 있었다. 그녀는 이천후에게 귀의한 이후 무려 사대 성교의 열세 차례 추격을 온몸으로 버텨냈다. 가장 위험했던 순간에는 심맥이 갈라지고 본원 정기가 새는 대야처럼 줄줄 흘러 조금만 더 버텼다면 경지가 무너질 위기였다. 이천후는 약정에 세 번째 법결을 날렸다. 그 즉시 금빛 보광을 머금은 ‘쇄성후’의 보골이 약탕 속으로 가라앉았다. 쇄성후는 서부 요역의 흉수 왕족으로 뼈 위에 어둡고 붉은 도문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엔 묵린현사의 뿔이 떠 있었고 갑자기 용음이 울리며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 세 걸음이나 뒷걸음질 쳤다. “이거 설마 쇄성후의 고기야? 설마... 네가 쇄성후까지 죽였단 말이야?” 공작 성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십여 년 전 요역의 대전에서 이 흉수가 고대 성왕의 오른편 세 번째 자리에 앉아 있던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 약정에서 끓고 있는 저 고깃덩이와 퍼지는 기운은 틀림없는 쇄성후의 것이었다. 이천후는 고개도 들지 않고 손끝에 청염을 피우며 대답했다. “나한테 도발하길래 죽여버렸어.”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약정에서 아홉 줄기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안에서 ‘후’와 ‘교’가 서로를 찢으며 싸우는 형상이 맺혔고 그 기세에 조상민 등은 땅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고 말았다. 공작 성녀는 약을 끓이고 있는 이 남자를 바라보며 그가 쇄성후와 싸웠을 장면을 상상했다. 약탕에서 퍼져나오는 향이 상처에 스며들자 그녀는 마침내 교중 장로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올바른 주인을 따르는 것이 타고난 혈맥을 가진 것보다 중요할 때도 있다.’ “와, 정말 거대한 교룡이네! 길이가 수십 장은 되는 것 같은데?” 탁재환이 묵린현사를 가리키며 감탄했다. “그건 묵린현사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