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7화

‘굳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되잖아. 이러면 나랑 언니는 뭐가 돼?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어.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서윤미가 반박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라는 뜻이었다. 한효진과 하경림의 표정이 점점 차가워졌다. “하하!” 한효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젯밤에 시혁이 갑자기 집에서 뛰쳐나가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어. 듣는 바에 의하면 서씨 가문 아가씨가 아프다고 했지. 얼마나 아프면 가정이 있는 유부남한테 연락해서 와달라고 부탁했을까? 나도 걱정되어서 이른 시간에 송 의사를 부르고 경림과 같이 와봤더니... 고작 미열이었다고?” 서은채는 한효진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눈치만 살폈다. 이 상황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서문혁과 곽정화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서문혁 부부는 이제야 한효진이 왜 의사를 데리고 왔는지 알게 된 것이었다. 병을 보이게 해준다고 했지만 사실 서은채한테 경고하러 왔다. 서윤미가 나서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르신, 언니랑 전혀 상관없는 일이에요. 저는 언니가 열이 나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걸 보고 많이 당황했어요. 서씨 가문 의사가 휴가를 내는 바람에 도움을 청할 곳이 형부밖에 없었고요. 전부 제 탓이에요.” 한효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형부라니? 우리 수아한테 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는데 말이야. 시혁이 어쩌다가 서씨 가문 둘째 아가씨의 형부가 되었는지 궁금하네.” 그녀는 기침하고는 말을 이었다. “시혁은 유부남이니 오해할 만한 호칭은 자제하는 게 좋겠어. 그리고 한밤중에 연락하는 것도 그만하는 게 어때? 서씨 가문 둘째 아가씨는 이 정도 상식도 없나 봐. 아니면 가정 교육에 문제가 있는 건가?” 서윤미는 주먹을 꽉 쥔 채 입술을 깨물었다. 예전에 한효진이 있는 자리에서 윤시혁을 형부라고 부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조금 전에 설명할 때 마음이 급해서 얼떨결에 윤시혁을 형부라고 말한 것이었다. 서윤미가 가만히 서 있자 화가 난 한효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