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악!”
날카로운 비명이 갑자기 저택의 고요함을 깨뜨렸다.
“명화야!”
“무슨 일이야?”
진문철과 이정희, 진기준, 그리고 육정훈까지 단번에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복부에 칼이 꽂힌 채 피 웅덩이 속에 쓰러져 있는 진명화를 본 순간 이정희는 한달음에 달려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명화야! 내 딸!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진명화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눈물을 쏟아내며 떨리는 손가락으로 진서인을 가리켰다.
“아마... 아마 지난번에... 저 때문에 언니를 물에 빠뜨리셔서... 언니가 마음속에... 원망이 남은 것 같아요... 그래서 그 화를 전부 저한테 쏟으면서... 저를 찔렀나 봐요...”
“진서인! 네가 인간이야?”
진문철은 눈이 뒤집힐 만큼 분노했다.
“우리 진씨 집안이 무슨 죄를 지어서 너 같은 배은망덕한 걸 키웠단 말이냐?”
이정희도 울며 욕설을 퍼부었다.
진기준 역시 찡그린 얼굴로 진서인을 보았다.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지만 결국 부모님과 함께 진서인을 꾸짖었다.
“서인아, 넌 정말 우리를 너무 실망시키는구나!”
육정훈은 혼란스러운 장면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만하세요! 일단 사람을 병원에 옮기는 게 먼저예요!”
진문철과 이정희, 그리고 진기준은 허둥지둥 진명화를 들쳐 안고 병원으로 향했다.
육정훈은 마지막까지 그 자리에 남아 있다가 떨리는 몸으로 창백하게 앉아 있는 진서인 앞에 다가왔다. 그러고는 몸을 낮춰 진서인의 얼어붙은 손을 잡으려고 했다.
육정훈의 목소리에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차분함과 위안이 담겨 있었다.
“서인아, 걱정하지 마. 세상이 무너져도 내가 널 지켜. 하지만 지금은 명화가 크게 다쳤으니까 우선 병원에 가서 상태부터 확인해야 해. 지난번에 네가 연못에 빠졌던 날엔 내가 없어서 벌어진 일이야. 이번엔 절대 그런 일 없게 할게. 내가 꼭 널 지켜줄게.”
예전 같았으면 진서인은 육정훈의 이런 말에 의지하고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진서인은 이것 역시 연극의 일부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육정훈은 모든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진서인이 오해받고 상처받는 모습을 그대로 지켜본 사람 중 하나였다.
아무 힘이 없는 진서인은 곧 육정훈에게 밀려 병원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의사가 심각한 얼굴로 진문철과 이정희에게 하는 말이 들려왔다.
“환자분은 신장 파열입니다. 상태가 매우 위중해서 즉시 신장 이식 수술을 해야 합니다.”
“네? 우리 명화가...”
이정희는 거의 기절할 듯 비틀거렸으며 진문철도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의사 선생님, 돈이 얼마가 들든 반드시 제 딸 좀 살려주세요!”
의사는 곤란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적합한 신장 기증자를 찾는 것입니다. 환자분이 A형인데 같은 혈액형의 기증자가 필요합니다.”
바로 그때 진문철과 이정희의 시선이 육정훈이 밀고 온 진서인에게로 꽂혔다.
두 사람은 동시에 눈을 번쩍이며 말했다.
“서인아! 네가 명화랑 혈액형이 똑같잖아! 네가 기증해! 당장 네 동생에게 신장을 기증해 줘!”
이정희는 구세주라도 찾은 듯한 얼굴로 진서인에게 다가갔다.
진기준은 얼굴에 잠시 연민의 빛이 스치더니 나서서 부모님을 막아섰다.
“아빠, 엄마, 서인이는 막 퇴원해서 아직 몸이 약해요...”
“기준아! 입 닥치고 있어!”
진문철이 고함을 질렀다.
“네 친여동생은 명화야! 서인이는 명화 인생을 훔친 가짜일 뿐이라고! 명화를 위해 신장 하나 주는 게 뭐가 문제라고! 이건 당연히 명화가 받아야 할 것이야!”
진기준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으며 진서인의 세계는 그 순간 완전히 무너졌다.
진서인은 휠체어 손잡이를 꽉 붙잡고 마지막 희망을 담은 눈빛으로 육정훈을 바라봤다.
“정훈아... 나 좀 데리고 가 줘.”
항상 맑기만 하던 진서인의 눈동자에는 두려움과 절박함이 가득했다.
육정훈은 진서인의 눈을 바라보다가 침을 한번 삼키고는 낮고 힘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서인아, 명화는... 죽으면 안 돼. 안 그러면 너희 부모님께서...”
육정훈이 끝까지 말을 잇지 않았지만 진서인은 그의 말뜻을 알 수 있었다.
부모님이 다시 무너질까 봐, 육정훈과 진기준이 짜놓은 죄책감을 덜기 위한 연극이 유지되지 않을까 봐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단 한 번이라도 진서인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진서인이 이 연극에 협조하고 싶은지, 진서인이 이 모든 상처를 견딜 수 있는지, 그런 고민을 단 한 번이라도 한 적은 있었을까?
육정훈은 몸을 숙여 두 사람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서인아, 조금만 더 참아. 응? 나중에 우리 결혼하면...”
결혼이라는 말에 진서인은 너무 우스워 이제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육정훈은 진서인이 그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곧 죽는다는 걸 모른다.
결국 진서인은 병원에서 막 퇴원한 허약한 몸으로 강제로 수술실로 끌려 들어갔다.
진서인의 절규와 살려 달라는 울부짖음은 썰렁한 병원 복도를 울리며 메아리쳤다. 하지만 그 소리는 단 한 사람의 마음도 움직이지 못했다.
차가운 마취제가 몸속으로 흘러 들어가자 진서인은 의식이 점점 흐려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 장면은 수술실 밖에서 단 한 번도 진서인의 편을 들어주지 않은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그들은 초조해하거나, 차갑거나,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진서인을 위해 나서 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