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다시 눈을 뜬 진서인은 손끝에서 밀려오는 뼈를 파고드는 듯한 고통에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진서인은 겹겹이 붕대로 감겨 있는 데다가 아직도 피가 배어 나오는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강제로 손톱이 뽑혀 나가던 아픈 기억이 파도처럼 몰려와 몸이 저절로 떨렸다.
“서인아, 깼어?”
진서인은 병상 옆에서 낮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았다. 잘생긴 육정훈의 얼굴에 피로감과 숨길 수 없는 죄책감이 섞여 있었다.
육정훈이 손을 내밀어 이마를 만지려 하자 진서인은 반사적으로 몸을 비키며 그 손을 피해버렸다.
육정훈은 허공에 멈춰 있는 손을 보며 눈빛이 한층 어두워졌다. 그러더니 손을 거둬들이며 더욱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서인아. 네가 얼마나 억울했는지 알아. 하지만 내가 그때 계속 너를 감싸줬더라면 네 부모님께서 우리 혼약을 취소해 버릴 거야. 그러면 우리 더 이상 함께할 수 없잖아.”
육정훈은 창백하고 허약한 진서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래를 내세워 안심시키려 했다.
“조금만 더 참자, 응? 네가 성인이 되면 우리 바로 결혼하자. 내가 꼭 널 데리고 이 집에서 나가게 해 줄게. 다신 누구도 널 건드리지 못하게 할 거야.”
‘참자고?’
진서인은 천장을 바라보며 육체는 이미 완전히 죽어버린 것만 같았다.
진서인에게 남은 생은 고작 한 달밖에 안 되기에 그녀는 그때까지 참을 수 없다.
결혼하는 그날까지 진서인은 살아있지 못 한다.
육정훈은 진서인 눈 속의 절망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그저 그녀가 깼다는 사실에 안도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인아, 푹 쉬어. 내가 여기 오래 있으면 네 부모님께서 또 너한테 화풀이하실 거야.”
그 말을 남기고 육정훈은 깊은 눈으로 진서인을 한 번 바라본 뒤 병실을 떠났다.
문이 닫히면서 육정훈의 뒷모습이 완벽히 가려지자 진서인의 세상에서 마지막 희미한 빛마저 사라져 버렸다.
이제 병실에는 진서인 혼자뿐이다.
그리고 진서인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고통이 잔혹한 현실을 상기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적막은 오래 가지 않았으며 곧 병실 문이 쾅 하고 거칠게 열렸다.
진명화가 몇몇 거칠어 보이는 양아치 같은 남자들을 데리고 병실로 들어왔다.
“와, 얘가 걔야? 명화 신분을 빼앗았다는 가짜 금수저 맞지?”
한 노란 머리 남자가 진서인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비웃었다.
“얼굴은 괜찮은데 장애인이네. 뻔뻔스러운 년.”
또 다른 건장한 남자가 훨씬 노골적이고 음란한 눈빛으로 진서인을 훑어보더니 혀로 입술을 핥았다.
“장애인도 장애인 나름의 맛이 있어. 얼굴이랑 몸매 좀 봐. 못 움직이면 더 재밌잖아. 마음대로 가지고 놀아도 되고...”
진서인은 온몸이 떨려오면서 순식간에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소름이 돋았다.
진서인은 진명화가 이 정도로 독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일부러 양아치들을 데려와 진서인을 능욕하려 하다니.
“나가! 나가라고!!”
진서인은 남은 힘을 짜내어 크게 외치면서 공포와 분노로 인해 목소리가 떨렸다.
“당장 안 나가면 경찰에 신고할 거야!”
“경찰?”
진명화는 마치 우스운 소리라도 들은 듯 낄낄 웃으면서 웃음 속에 확신과 오만이 가득했다.
“진서인, 잊었어? 이 병원은 우리 집안에서 투자한 병원이야. 신고해 봐. 경찰이 널 믿을까? 나를 믿을까? 뭘 보고만 있어? 얼른 볼일 봐!”
마지막 희망이 부서진 진서인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다가오는 남자들과 뒤에서 비웃고 있는 진명화를 바라보았다.
절망이 파도처럼 밀려오자 진서인은 능욕당하고 차라리 스스로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죽음에 대한 결심이 진서인의 몸 안에 폭발적인 힘을 일으켰다.
진서인은 병상에서 몸을 굴려 바닥으로 떨어지며 온몸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상관없었다.
움직일 수 있는 한 손과 팔로 움직이지 않는 두 다리를 끌며 진서인은 필사적으로 창문을 향해 기어갔다.
“창문으로 뛰어내리려고 해! 빨리 막아!”
뒤에서 놀란 비명과 급한 발소리가 들려왔지만 진서인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머릿속엔 오직 지금 당장 여기서 깔끔하게 죽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진서인은 마지막 힘까지 모아 창문틀을 붙잡고는 창밖으로 몸을 내던졌다.
순간적으로 몸이 붕 뜨더니 거센 바람이 귀를 스치며 울부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