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3화

어릴 적에도 방건우는 성유리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했지만 예전에는 그 동작이 이렇게까지 묘하게 다가온 적은 없었다. 성유리는 거의 본능적으로 시선을 들어 방건우의 눈 속에 깃든 그 다정함을 마주했고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득해졌다. “유리야?” 방건우의 목소리에 성유리는 반사적으로 정신을 가다듬었다. 마음을 추스른 뒤, 옅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다 좋아요. 선배가 알아서 해주세요.” “집에 재료는 있겠지? 네가 좋아하는 거 사다 줄까?” “괜찮아요. 어제 미연이가 식재료를 많이 사 와서 냉장고에 아직 있어요.” “그래.” 방건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머리에서 손을 거뒀다. “그럼 난 먼저 갈게. 너도 일찍 와.” 성유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오늘은 진료소에서 함께 일하던 진무열이 집안일로 먼저 돌아갔기에 안에는 성유리 혼자였다. 마침 환자도 없었던 터라 성유리는 잠시 정리만 하고 일찍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때 약장 서랍 몇 칸이 덜 닫힌 게 보여 성유리는 일어나 서랍을 닫으려 걸음을 옮겼다. “아까 그 사람이랑 무슨 얘기 했어?” 바로 그 순간, 등 뒤에서 낮고 깊은 목소리가 불쑥 들려왔다.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성유리는 온몸이 움찔하며 놀랐고 서랍 손잡이를 잡고 있던 손이 저절로 멈췄다. 고개를 돌리자 계산대 바깥에 서 있는 박지훈이 시야에 들어왔다. 성유리는 눈가에 짙은 불쾌함을 띄우며 말했다. “아니... 걸어 다니는게 소리도 안 내나요?” “그렇게 놀란 걸 보니 설마 뭔가 찔리는 짓이라도 한 거야?” 박지훈은 계산대에 손을 얹고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아까 보니까 꽤 다정해 보이던데 혹시 하면 안 되는 얘기라도 나눴어?” 성유리는 무심히 그를 흘겨보고는 다시 몸을 돌려 서랍을 밀어 넣었다. “그랬으면 어쩔 건데요. 아니면 또 어쩌실 건데요. 지훈 씨랑 무슨 상관인데요?” 그 말이 끝나자, 박지훈은 계산대를 돌아 나와 성유리 쪽으로 성큼 다가왔다. 마지막 서랍을 밀어 넣으려던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