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화
고태준은 그대로 뒤돌아 밖으로 나가려 했으나 문 앞까지 갔다가 미련이 남은 듯 도현우를 한 번 더 돌아봤다.
“현우야, 넌 안 가? 여기서 설이라도 쇠게?”
속뜻은 하나였다.
‘내 아내 집에 너 오래 있는 건 싫어.’
도현우는 수건을 내려놓고 심유나를 향해 온화하게 웃었다.
“그럼 나는 먼저 갈게요.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
그 부드러운 말투는 고태준의 거친 태도와 선명하게 비교되었다.
심유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현우 오빠. 옷은... 제가 깨끗하게 빨아서 돌려줄게요.”
“서두르지 않아도 돼.”
도현우는 그녀를 지그시 바라봤다. 시선은 붉어진 그녀의 귓불에 잠시 머물렀다.
이윽고 그는 돌아서서 고태준을 따라 나갔다.
키도 체격도 비슷하게 크고 반듯한 두 남자가 나란히 계단을 내려갔다.
초가을의 한밤중이라 바람이 제법 서늘했다.
고태준은 차 옆에 기대고 서서 담뱃갑을 꺼내서는 한 개비를 털어 도현우에게 내밀었다.
“고마워.”
그는 퉁명스레 한마디 던지고는 고개를 숙여 불을 붙였다.
불꽃이 손끝에서 깜빡이며, 울적한 그의 옆모습을 비췄다.
하건욱 그 쓰레기를 두들겨 패고도 마음속에 남은 화가 가라앉지 않았고 그 화를 풀 데도 없었다.
그러다 문득 심유나가 떠올랐다.
그저 아래에 잠깐 서 있기만 해야 한다고 해도, 그냥 한번 보고 싶었다.
그러나 심유나의 집 아래에 도착한 그는 홀린 듯이 올라왔다. 도현우만 없었더라면 스킨답서스 핑계라도 대며 그녀 집에 눌러앉아 하룻밤을 버텼을지도 모른다.
도현우는 담배를 받아 손가락 사이에 끼웠지만 불을 붙이지 않았다.
그는 차 문에 기대어 켜져 있는 위층의 불빛을 올려다봤다.
조금 전, 심유나의 손바닥이 자기 가슴에 닿았던 감촉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했다.
부드럽고 여린 촉감, 당황스러움과 수치심이 섞인 눈빛은 겁먹은 작은 토끼 같았다.
‘조금만 더.’
고태준이라는 불청객만 없었더라면 그 애매한 분위기를 발판 삼아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한 번 더 닿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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