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지금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고태준은 취해서 비틀거리며 말했다.
“왜 유나 목소리가 안 들리지?”
고태준은 휴대폰을 몇 번 치더니 목청을 높이며 말했다.
“여보! 유나야! 전화 좀 받아봐.”
도현우는 주사를 부리는 고태준을 말렸다.
“태준아, 소리 그만 쳐. 너 차단당한 거야.”
“차단? 유나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나를 차단할 리가 없지.”
고태준은 자리에 털썩 앉으면서 고개를 젓더니 조금씩 정신이 들기 시작한 듯했다.
“맞아. 유나가 나를 차단했었어. 안 돼. 유나한테 설명해야 해!”
고태준은 다시금 자리에서 일어나며 비틀대면서 걸었다.
“하긴, 갈등은 해결하는 게 맞지.”
도현우는 고태준을 부축하더니 고태준이 오늘 반드시 심유나를 찾아갈 것 같자 더는 그를 설득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설득한다면 너무 티가 날 것이다.
“요즘 날씨 추워졌더라. 일기 예보 보니까 저녁에 비가 온다던데 유나 성격에 자기 몸을 챙길 리가 없어. 앓게 되어도 옆에 챙겨주는 사람이 없을 거야.”
도현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고태준에게 술잔을 쥐여줬다.
“맞아. 유나는 몸이 약한 편인데 자기 몸을 아낄 줄 몰라.”
고태준은 자신의 차 키를 찾기 시작하다가 도현우가 건넨 술잔을 보더니 본능적으로 그것을 건네받은 뒤 단숨에 잔을 비웠다.
도현우는 몇 걸음 움직여 차 키를 막아선 뒤 계속해 고태준에게 말을 걸었다.
“고등학교 때 기억나? 그때 유나 40도까지 열이 올랐는데도 수업을 빠지지 않았었잖아. 혹시라도 뒤처지면 너랑 같은 대학교에 못 갈까 봐서 말이야.”
도현우는 술을 따른 뒤 고태준과 잔을 부딪쳤다.
고태준은 그 말을 듣자 마음이 더 초조해졌다.
심유나는 추위를 많이 탔고 겨울만 되면 손발이 늘 차가워서 고태준은 결혼 전에 그녀에게 핫팩을 세 개씩 사주었다.
그리고 결혼 후에는 자기 배로 심유나의 발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게다가 심유나는 겁도 많아서 잘 때면 늘 불을 켜두고 그가 잠들 때까지 달래줘야 했고, 심유나가 잠이 들면 그제야 고태준도 불을 끄고 잘 수 있었다.
“지금 당장 내 아내를 데려와야겠어!”
도현우는 벌게진 고태준의 얼굴과 그의 불안정한 눈빛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단은 유나를 데려오는 게 가장 중요해. 유나가 네 곁에 있어야 뭘 하든 할 수 있을 거 아니야?”
고태준은 제정신이 아닌 상황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반드시 유나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야겠어!”
“그래. 그래야지.”
도현우는 먼저 차 키를 내밀며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 비서한테 너를 거기까지 데려다주라고 할게. 조심히 가.”
“고마워.”
고태준은 그의 어깨를 툭툭 친 뒤 비틀거리면서 클럽을 나섰다.
문이 닫히자, 도현우의 얼굴에 걸려 있던 온화한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미처 비우지 못한 술잔을 들었고 그로 인해 노란색의 액체가 그의 손끝에서 가볍게 흔들렸다.
술을 들이켜자 차가운 액체가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도현우의 입가에 소리 없이 미소가 번졌다.
‘가, 고태준. 너의 그 가엾은 오만함으로 유나를 더 멀리 밀어내서 내 품으로 보내도록 해.’
밤 열두 시.
심유나는 드디어 그날 마무리해야 할 일을 끝내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밀려오는 피로에 그녀는 곧장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아파트 아래에는 검은색의 차가 멈춰 섰다.
고태준은 짙은 술 냄새를 풍기며 차에서 내린 뒤 빠르게 위층으로 올라갔다.
“0817. 틀렸습니다.”
안내음이 들려왔다.
“그럴 리가. 내 생일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고태준이 다시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그의 손등에 핏줄이 불거졌다.
푸른빛을 내뿜는 도어락 위로 고태준의 취기 어린 눈동자가 비쳤다. 술에 취한 고태준은 비밀번호가 계속 틀리자 점점 화가 끓어올랐다.
“하!”
고태준이 차갑게 웃으며 지문 인식기에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그의 머릿속에 2년 전 심유나가 처음으로 그를 데리고 이 집에 왔을 때가 떠올랐다.
심유나는 마치 들뜬 다람쥐처럼 흥분한 얼굴로 그의 손을 잡고 말했었다.
“태준 씨, 이것 봐요! 여기는 내가 번역해서 번 돈으로 산 첫 번째 집이에요!”
심유나가 미소를 짓자 얼굴에 귀여운 보조개가 생겼다.
“우리한테는 이미 집이 있잖아.”
고태준은 30평도 안 될 것 같은 집을 둘러보며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면서 늘 그렇듯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렇게 작아? 불편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