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63장 복수
자유로운 차림도 시간과 장소가 중요했다.
아무도 이 땅을 위해 희생한 영귀들을 대신해 그들을 용서할 자격은 없었다.
만약 영귀들이 정말로 돌아와서 기모노를 입고 춤추고 노래하는 젊은이들을 봤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그들은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여전히 괴롭힘당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당시 제정신이 아니었던 리오처럼 말이다.
그때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그러므로 이런 문제는 논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고 저도 모르게 경계하지 않게 된다.
해마다 스파이가 적발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상대방은 자신의 외모로 사람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거리낌 없이 굴었다.
조금 전에는 여자 사람 친구를 만나서 잘난 척을 했다.
그러다 사람이 없어지자 본색을 드러냈다.
진희원은 어두워진 눈빛으로 그를 따라갔다.
그의 손등에는 아주 작고 가는 타투가 하나 있었다.
이러한 취미 또한 유행이었기에 일반인들은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진희원은 조금 전 스퀘어에 있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중 거의 모두가 그 문신을 가지고 있었음을 발견했다.
그들을 식별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듯했다.
“저 앞에 있는 차는 저 사람을 데리러 온 거군요.”
백발의 소년은 아주 똑똑했다. 그는 샌드위치를 먹으면서도 사소한 부분을 캐치할 수 있었다.
진희원은 택시를 잡아서 따라갔다. 경주의 기사님들은 이런 일을 가장 좋아했다. 그는 진희원이 앞의 차를 따라가달라고 하자 무척 들떠 하면서 듣고 있던 소설도 듣지 않고 아주 숙련된 운전 솜씨를 뽐냈다.
진희원은 그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기사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정도는 나한테 껌이에요.”
백발의 소년은 진희원이 준 자옥 펜던트를 목에 걸고 있었다.
그 자옥은 왠지 모르게 익숙하게 느껴졌다. 마치 아주 오래전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자옥 펜던트를 만지자 그 옥이 자신의 기운을 감춰주는 게 확연히 느껴졌다.
진희원의 말이 맞았다. 그에게 있어 최선의 선택은 진희원을 따르는 것이었다.
차가 서쪽 간선도로로 접어들면서 진희원의 눈빛이 살짝 달라졌다.
그녀는 이 길이 익숙했다. 이곳에서 바이크를 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고민했던 문제의 답을 마침내 밝힐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진희원은 곧 손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굴었다.
“오빠, 절 한 번 도와주셨으면 해요.”
막 주주총회를 마친 진기풍은 순간 분노가 완전히 사라졌다.
차가운 그의 얼굴 위로 짙은 애정이 드러났다.
그로 인해 그의 뒤를 따르고 있던 비서는 어리둥절해졌다.
조금 전까지 진기풍은 일부 주주들의 실수로 표정이 차갑게 굳어져서는 당장 해고라도 시킬 듯했는데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희원아, 오빠가 뭘 해주길 바라는 거냐? 얘기해 보렴.”
진기풍은 말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시선이 비서에게 닿았고 그 의미는 지금 준비하라는 뜻이었다.
비서는 진희원이라는 말에 곧바로 깨달았다.
진희원이라면 뭐든 해줄 수 있었다.
그들의 월급이 이렇게 폭발적으로 늘 수 있었던 건 전부 진희원 덕분이었기 때문이다.
“오빠의 첫사랑 그분과 약속을 잡고 싶은데...”
진기풍을 그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
진희원은 드디어 움직일 생각인 듯했다.
그동안 진기풍은 진희원의 뜻에 따라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진기풍이 화가 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는 매번 진심을 다했다.
해외에서 신유정을 만났을 때도 그는 진심으로 그녀를 도왔다.
그러나 진희원의 꿈 얘기를 들었을 때, 그리고 신유정이 귀국한 뒤 그의 이름을 앞세워 한 짓들을 알게 되었을 때 진기풍은 진희원이 했던 말을 계속 상기했다.
신유정은 결혼한 뒤 그의 유언에 따라 넷째 동생에게 주식을 물려주지 않고 주식을 팔았다.
그래서 넷째는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났고 진씨 일가는 풍비박산 났다.
그는 후회 때문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동안 진작에 복수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