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64장 진원을 찾다
신유정은 아주 오랜만에 진기풍의 연락을 받았다.
비서가 이따금 꽃을 보내오지 않았더라면 신유정은 진기풍이 뭔가를 알게 되어서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네, 맞아요. 그 사람이 진 대표님을 찾아가 보고 싶다고 했어요.”
신유정은 홀가분한 어투로 말했다.
“준비가 안 될 때를 대비해서 미리 말씀드리는 거예요.”
“왜 갑자기 너와 함께 날 찾아오고 싶다고 한 거지?”
진원은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노력했다. 그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걔한테 내 얘기를 꺼낸 거야?”
신유정은 조금 찔렸다.
“그 사람이 계속 저한테 외국에서 지내는 건 어떠냐고 물었어요. 그래서 진 대표님을 우연히 만났고 진 대표님이 절 알아봤는데, 그 사람이 절 좋아하는 걸 알고 제게 너무 모질게 대하지는 않았다고 했어요.”
진원은 그 말을 듣더니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누가 그렇게 얘기하랬어?”
진원은 단향목으로 만들어진 팔찌를 꼭 쥐었다. 신유정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월스트리트의 늑대라고 불렸던 조카 손주가 어쩌다 그녀를 좋아했는지 의문이었다.
진원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네가 그렇게 말했을 때 진기풍의 반응은 어땠어?”
“진 대표님에게 아주 고마워했어요.”
신유정이 아는 건 젊었을 때의 진기풍이었다. 게다가 진기풍은 예전에 그녀를 경계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신유정은 착각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큰할아버지처럼 현명하셨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신유정은 당장 진씨 일가에 시집가서 재벌 집 며느리 생활을 하고 싶었다.
그동안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서 견디기 너무 괴로웠다.
게다가 해외에서도 계속 재촉해왔다. 그녀는 국내의 이런 상황에서라도 체면을 세워야 했다.
진기풍은 그동안 비서를 보냈는데 별로 돈이 되지 않는 자질구레한 것들을 선물로 주었다.
중학생 때 공유했었던 추억이라면서 말이다.
신유정은 너무 싫었지만 겉으로는 기쁘게 선물을 받았다.
오늘 드디어 효과를 보게 되었다.
진원은 신유정의 말을 듣고 살짝 멈칫했다.
그가 너무 민감한 탓일까? 그의 조카는 그저 신유정을 신경 쓰는 것뿐일지도 몰랐다.
진원은 전에 받았던 문자를 바라보았다.
윤성훈의 일이 실패했고, 적지 않은 주주들이 그에게 어떻게 할 거냐고 묻고 있었다.
그의 몇몇 오래된 친구들도 사업에 타격을 받았다.
게다가 더 당황스러운 건 두세 명 정도 감옥에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윤씨 일가는 그들을 계속 압박해 왔다. 어쩌면 언젠가는 그를 조사하려고 할지도 몰랐다.
진기풍의 출현은 현재 상황을 가장 잘 완화할 수 있었다.
그가 앞에서 막아준다면 이 일에서 발을 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이 들자 진원은 더 망설이지 않았다.
“같이 오도록 해. 그때 가서는 말투와 분수에 유의해.”
“네, 걱정하지 마세요. 알고 있어요.”
두 사람이 전화를 끊자마자 집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어르신, 귀한 손님이 왔습니다. 뒷마당에 계세요.”
뒷마당?
진희원은 뭔가를 눈치챈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누구지? 얘기했어?”
집사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직접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오다 씨 친구라고 합니다.”
진원은 그 말을 듣더니 뒷마당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별장 밖, 1km 밖에 택시가 멈춰 섰다.
경호원이 막았다.
“죄송하지만 앞은 개인 주택이라 안으로 들어가실 수 없어요. 오른쪽으로 꺾으셔야 해요.”
택시 기사는 그 말을 듣더니 뒤를 바라보며 입을 열려고 했다.
진희원은 차창을 내리고 차갑고 아름다운 옆얼굴을 드러냈다. 그녀는 느긋하게 말했다.
“저도 들어갈 수 없나요?”
“진, 진희원 아가씨!”
경호원은 조금 당황했다.
“진희원 아가씨라면 당연히 들어가실 수 있죠. 하지만 어르신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