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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문성아는 멍한 표정으로 인공호흡하는 안도혁을 바라봤다. 머리카락에 맺힌 물방울이 몸에 후드득 떨어졌지만 마음이 싸늘하게 식어서 그런지 별로 차갑지도 않았다. 전생, 차갑고 오만한 안도혁은 문성아와 손만 스쳐도 화장실로 달려가 손을 벅벅 닦았다. 처음에는 문성아도 안도혁이 결벽증을 앓고 있어 여자를 멀리하는 거라고 생각해 어떻게든 가까워져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다 오늘, 안도혁이 그동안 보였던 차가운 모습이 다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서 그랬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문성아는 어떻게든 바닥으로 기어오르려고 손에 힘을 줬다. ‘이대로 죽으면 안되지. 아직 준서와 결혼도 못 했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안도혁이 기나긴 인공호흡을 끝내자 소유희가 기침하며 천천히 눈을 떴다. “유희야.” 안도혁은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는 듯 소유희를 번쩍 안아 들었다. “병원으로 가자.” 안도혁은 그대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온몸이 젖은 채로 옆에 쓰러진 문성아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말이다. 그때 정신을 차린 나머지 세 사람이 혼자 힘으로 수영장에서 올라온 문성아를 발견했다. “성아야.” 정사언이 제일 먼저 문성아를 향해 뛰어갔다. 그는 오늘 진청색 슈트를 입었는데 허둥지둥하는 와중에도 여전히 귀티 나고 우아했다. 하은수와 강지환도 그 뒤를 바짝 따랐다. 세 사람이 함께 서 있으니 마치 정성들여 꾸며놓은 화보 같았다. “성아야. 괜찮아?” 정사언이 손을 내밀어 문성아를 부축하려 했다. “아까는 상황이 급해서... 우리가...” “우리가 유희를 너로 착각했나봐.” 하은수가 얼른 덧붙였다. 강지환이 수건을 건네며 말했다. “그래. 물이 너무 혼탁해서 잘못 봤어.” 수건을 건네받는 문성아의 손가락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그 핑계가 우스워도 너무 우스웠다. 수영장 물은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았고 소유희는 하얀 원피스를, 문성아는 빨간 원피스를 입었는데 잘못 봤을 리가 없었다. “병원 가서 검사해 보자.” 정사언이 부드럽게 말했다. “우리가 함께 가줄게.” 고개를 든 문성아의 눈에 다급한 세 사람의 표정이 들어왔다. 진심으로 문성아를 걱정해서 이러는 게 아니라 소유희를 보고 싶었을 뿐이다. “됐어.” 문성아가 수건을 아무렇게나 던지며 말했다. “난 괜찮아.” “어떻게 그래.” 하은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몸이 다 젖었는데 그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병원에 가고 싶은 거라면...” 문성아가 하은수의 말을 잘랐다. “알아서 가.” 그러자 세 사람이 눈빛을 주고받았다. “우리는 다친데도 없는데 병원에 왜 가.” 강지환이 다시 입을 열었다. “화내지 마. 아까는 정말 잘못 본 거야. 요 며칠 회사 나가지 않고 옆에 있어 줄게. 잘못했으니까 보상해야지.” 문성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푹 젖은 옷을 입고 있자니 걸음마저 무거워지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허리를 꼿꼿이 편 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뒤로 3일간, 세 남자는 온갖 방법을 다 대가며 문성아에게 잘 보이려 했다. 정사언은 하렐 패션 위크에서 선보인 신상 오트 쿠튀르 드레스를 보내왔고 하은수는 희귀한 핑크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항공편으로 보내오는가 하면 강지환은 한정판 스포츠카를 보내왔다 “성아야, 오늘 밤 경매가 열릴 거야.” 정사언이 부드럽게 초대장을 건넸다. “같이 바람 쐬러 갈래?” 문성아는 어떻게든 잘 보이려 애쓰는 세 사람을 보며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경매 현장은 그야말로 휘황찬란했고 으리으리한 샹들리에가 경매장을 낮처럼 환하게 비춰줬다. 문성아는 하이힐을 신고 천천히 안으로 입장했다. 샴페인 색상의 드레스가 굴곡진 몸매를 잘 드러냈다. 다만 계속 안으로 들어가려던 문성아는 눈앞에 펼쳐진 장면에 걸음을 우뚝 멈췄다. VIP구역에서 안도혁이 조심스럽게 소유희를 부축해 자리에 앉히는 게 보였다. 핏이 좋은 까만 슈트를 입은 안도혁은 길쭉한 체격이 더욱 돋보였고 문성아가 흠뻑 빠진 예쁜 눈매는 옆에 앉은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문성아를 본 안도혁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예상외로 먼저 다가왔다. 차가운 목소리는 마치 거래하러 나온 사람 같았다. “너희 어머니가 약혼자에 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어?” 문성아는 고개를 들어 거리감이 느껴지는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봤다. “나 좋아하는 거 알아.” 안도혁이 매정하게 입을 열었다. “그래도 나는 너 좋아하지 않으니까 나 선택하지 마.” 그러더니 고개도 돌리지 않고 몸을 돌려 소유희의 허리를 감쌌다. 소유희가 마치 큰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성아야, 슬퍼하지 마.” 정사언이 얼른 그쪽으로 다가가 긴 손가락을 문성아의 어깨에 올리며 말했다. “도혁은 안목이 없을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은 아니야.” 하은수가 금테 안경을 올리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래. 우리 셋은 너 좋아하니까 변함없이 네 곁을 지킬 거야.” 강지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웨이터의 손에서 샴페인을 한잔 받아 문성아에게 건넸다. “공주님, 기분 나쁜 일을 잠시 잊고 뭐 좀 먹어.” 문성아는 일편단심인 척하는 세 남자를 보며 자기 자신을 조롱하듯 입꼬리를 올렸다. 샴페인 잔을 잡은 손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괜찮아.” 문성아가 아무렇지 않은 듯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 “그런데 성아야.” 정사언이 몸을 숙이자 뜨거운 숨결이 문성아의 귓가에 닿았다. “준서를 외국으로 쫓아내는 바람에 약혼자가 네 명밖에 남지 않았는데 우리 넷중에 누굴 선택할 거야? 너무 궁금해.” 문성아는 아무도 선택하지 않겠다고 말하려다가 생각을 바꿨다. “며칠 뒤면 알게 될 거야.” 이 말에 안절부절못하는 네 남자를 보며 문성아는 입꼬리를 올렸다. 전생에 문성아는 20년이나 고통 속에 몸부림쳤는데 그들이 고작 며칠 마음을 졸이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경매가 시작되자 세 사람은 쉬지 않고 마음에 드는 게 있냐고 물었지만 문성아는 그저 고개만 저었다. 한편, 안도혁은 소유희가 마음에 들어 하는 건 하나도 빠짐없이 다 사들였다. 다이아몬드 목걸이, 오래된 회중시계, 옥팔찌까지... 문성아는 그것들을 보고도 전생처럼 마음 아파하지 않았고 오히려 아무 표정 없이 차분하게 앞을 내다봤다. 그러다 마지막 경매품이 올라오고 경매사가 가렸던 천을 내린 순간 문성아는 눈빛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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