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세 사람이 서로 눈치를 살피더니 그런 문성아가 귀엽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아무래도 문성아가 성질을 부린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러면 이건 어때?”
강지환이 문성아에게 가까이 다가서며 말했다.
“날씨도 좋은데 우리 승마장에 바람 쐬러 갈까?”
문성아가 냉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싫어.”
“그러지 말고.”
하은수가 타일렀다.
“성아야. 나가서 바람 쐬면 상처에도 좋을 거야.”
정사언은 아예 문성아를 차로 끌고 갔다.
“가자.”
로열 승마장은 잔디가 푸릇푸릇했다. 바람이 불자 상큼한 잔디 냄새가 풍겨왔지만 문성아는 온몸에 한기가 맴도는 걸 느꼈다.
“성아야, 일단 말부터 고르자.”
하은수가 헬멧을 하나 건넸다.
“우리가 다과 준비할게.”
문성아는 덤덤한 표정으로 헬멧을 받아서 들고 온순한 암컷을 골랐다. 잠깐일지라도 그녀를 숨 막히게 하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안정을 취하고 싶었다.
말이 천천히 달리기 시작하자 미풍이 얼굴을 스쳤다. 그제야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던 어지러운 일들이 천천히 가시는 것 같았다.
잠깐 긴장을 늦추는데 먼 곳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어흥.
어디서 나타났는지 수백 필의 말이 미친 듯이 문성아를 향해 달려왔다. 문성아는 얼른 방향을 틀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아무리 고삐를 당겨도 놀란 말은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상황에 문성아는 고삐를 놓치고 그만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아악.”
첫 번째 말이 문성아의 종아리를 밟고 지나가자 문성아는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곧이어 두 번째, 세 번째 말이 사정없이 문성아를 밟고 지나갔다. 파란 잔디밭은 이내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문성아의 의식이 점점 꺼져가는데 시야에 먼 곳에 서서 차가운 눈빛으로 지켜보는 세 사람이 들어왔다.
다시 깨어났을 때 눈을 찌르는 섬광에 문성아는 본능적으로 눈을 찡그렸다. 온몸에 붕대를 감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조금만 움직여도 몸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문밖에서 안도혁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 셋, 해도 해도 너무한다...”
문성아가 숨을 참았다.
“나는 유희에게 헌혈해 준 걸로 지나가려고 했는데 너희는.”
안도혁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간병인을 매통 해서 괴롭힌 것도 모자라 일부러 말들을 풀어서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분쇄성 골절은 둘째 치고 하마터면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뻔했어.”
“누가 유희 괴롭히래.”
강지환의 목소리는 깃털처럼 가벼웠다.
“살짝 혼내줬을 뿐이야. 그래야 정신을 차리지.”
“맨날 좋아하는 척 연기하는 것도 이제 지쳐. 역겹다고.”
정사언의 말은 독을 발린 화살이 되어 문성아의 가슴에 사정없이 박혔다.
“유희만 아니었으면 이런 소꿉장난에는 관심도 없었어.”
아랫입술을 꽉 깨물자 비릿한 냄새가 입안을 가득 메웠다. 화상을 입은 것도, 피가 주삿바늘을 따라 역류한 것도, 말발굽에 밟힌 것도 다 사고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사고로 위장한 고의였다.
문성아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싫어한다고 해도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소꿉친구인데, 전에는 동생이라고 부르며 아플 때 밤새 옆을 지켜주고 생일이면 서프라이즈해주려고 했던 그들인데 어쩌다 알고 지낸 지 고작 몇 달밖에 안되는 소유희를 위해 이 정도로 몰아세우는지 말이다.
달려 나가서 울며 따져 묻고 싶었지만 몸에서 전해진 촘촘한 고통에 문성아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깨어났을 때 병실은 아무도 없었고 핸드폰 화면만 환하게 켜져 있었다.
[성아야. 미안해. 우리가 한눈 파는 바람에 지켜주지 못했어. 볼 면목이 없어서 바로 해외로 나가는 중이야. 선물이라도 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몸조리 잘하고 기다려.]
[갖고 싶은 게 있으면 그게 뭐든 말만 해. 우리가 다 사다줄게.]
문성아는 이제 그 문자를 봐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슬퍼하는 것도 그만큼의 체력이 필요했다. 그들의 얼굴도, 그 얼굴로 전하는 가식적인 관심도 보기 싫어 혼자 병실에서 조용히 상태가 좋아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병실 문이 벌컥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