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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화

심화영은 잠시 멈칫했으나 곧 모든 것을 깨달았다. 손채윤이 자신에게 적대적인 것은 삼황자 때문만이 아니었다. 손씨 가문과 심씨 가문은 본래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고 그녀가 대비마마의 생신연에서 손 상서에게 망신준 일 또한 적의를 키운 이유였다. 그리고 그 조롱이라 함은 바로 심화영이 ‘경성 세 폐인 중 으뜸가는 무식한 여인’이란 소문을 두고 비웃는 것이었다. 심화영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곧 미소 지으며 말했다. “됐어요, 안으로 들어갑시다.” 그러고는 심여진의 손을 끌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무식하다 한들 저들보다 한 생을 더 살았어. 이런 풋내기 아가씨들의 조그만 수작까지 마음에 담는다면 그야말로 헛산 거지.’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빛을 띤 심여진을 본 그녀는 다정히 위로하였다. “괘념치 마시어요. 조정의 권세가들에 비하면 저 여인네들이 무슨 풍파를 일으키겠어요? 험담하고 싶다면 시원스레 하라지요. 저는 듣지도 마음에 담지도 않으니.” 심여진은 그녀를 한참 바라보다가 긴 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가 이리 속이 넓은 줄은 몰랐구나... 하나 우리도 너무 위축될 것 없다. 너는 어릴 적부터 총명했으니 부지런히 배운다면 곧 따라잡을 수 있을 거야.” 이 말에 빙긋 웃던 심화영은 문가 쪽 창가에 쌓인 먹지와 종이 뭉치를 힐끗 바라보며 물었다. “요즘 명 선생님께서 학업 관련된 일을 전부 언니께 맡긴 것입니까?” “그래, 요즘 눈이 좋지 않다며 자꾸 눈앞의 글을 피하시더구나...” 심여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 전부터 이곳에서 자고 있는데 밤마다 남자 학생들이 들어차니 여인네들은 다들 집으로 돌아가더라. 나 홀로 이곳에 있으려니 참으로 불편하고 밤이 되면 괜히 겁이 나.” 그녀는 무언가 떠올랐는지 목소리를 낮추었다. “참, 어제 오라버니께서 나더러 제왕을 주의 깊게 살펴보라 하시던데... 네가 한 말이더냐?” 심화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창가로 다가가 맞은편 누각을 바라보았다. “제왕은 저 누각에 종종 머무르는데 행실이 방탕하다더라고요. 폐하의 동생이라는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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