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화

“...” 송해인은 한은찬 목소리 속에 숨어 있는 미묘한 분노를 느끼고 잠시 멈칫했다. 이 상황이 우습고도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지영이 이제 곧 집에 들어올 판인데 정작 한은찬은 엉뚱하게도 자신을 의심하다니. 한은찬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제 막 잠에서 깬 한은미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단호하게 송해인이 바람을 피운다고 몰아붙였다. “오빠, 해인 씨 몰래 다른 남자 만나는 거 틀림없이! 해인 씨 이번에 깨어난 뒤로 이상한 점 없었어?” 한은찬은 한은미더러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한은미의 마지막 말은 분명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송해인이 이번에 깨어난 뒤, 예전과 다른 구석이 있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한은찬은 눈앞의 송해인을 가만히 지켜봤다. 분명히 예전과 같은 얼굴이었고, 심지어 5년 전보다 더 연약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의 미간이 얇게 찌푸려졌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불안과 짜증이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해인아, 해명할 생각 없어?” 그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 한은찬은 정말로 그녀를 의심하고 있었다. 송해인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창백한 손가락이 침대 시트를 꼭 움켜쥐었다.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싸늘한 기운이 몸 안 깊숙이 퍼져 나갔다. 그녀는 수없이 상처받고도 이제 더는 실망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는데 한은찬의 뻔뻔스러움은 늘 그 다짐을 무너뜨렸다. “그 남자는 내가 눈이 보이지 않으니까 안쓰러워서 도와줬을 뿐이야. 은미 씨가 나 때리려 했어. 그래서 그 남자는 그냥 나 막아준 거라고. 내가 그 사람 차에 탔던 건... 그 사람이 혹시라도 은미 씨가 또 쫓아올까 봐 걱정돼서 집까지 태워주겠다고 한 거야.” 한은찬은 여전히 그녀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는 낮게 물었다. “그 남자가 널 어디까지 데려다줬는데?” “청진대 정문 앞까지. 은찬아, 아직도 의심된다면 학교 정문 CCTV 확인해 보면 되잖아.” 송해인은 최대한 담담한 척 말하며 선글라스 아래로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냈다. “더 따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