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네덜란드로 향하는 직항 비행기는 날씨 문제로 인해 예정 시각보다 한참 늦은, 다음 날 새벽이 되어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신채이는 창가에 앉아 점점 멀어져가는 도시를 바라보았다.
익숙했던 풍경들이 서서히 작아지더니 결국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으며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끝없이 이어지는 산맥과 구름뿐이었다.
비행기가 점점 더 높이 날아오르자 그제야 실감이 났다.
‘정말, 이제 떠나는구나.’
태어나 처음으로, 완전히 혼자서 낯선 외국 땅에 발을 들이게 된 순간이었다.
예전의 그녀라면 늘 용기가 부족해 결코 상상하지 못했을 인생의 선택지였다.
신채이는 자주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그때 기억을 잃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여전히 스스로 만든 감정의 감옥에 갇혀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변화가 있었기에 알게 된 것도 있었다.
무언가를 놓아주는 일이 꼭 그렇게 고통스럽지만은 않다는 걸 말이다.
사랑한다고 믿었던 사람들에게서 실은 아무런 사랑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그녀는 단호하게 조용히 떠나기로 했다.
박한섭도, 자신의 부모도 더 이상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기대가 있으면 실망이 따르는 법, 차라리 기대 따위 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놀라운 건 이 결심이 그녀를 고통스럽게 만들지도, 후회하게 만들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마음속에는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짙은 해방감과 아직 뜨겁지는 않지만 서서히 피어오르는 희망 하나가 있었다.
이러한 생각들이 마음속 그림자를 조금씩 걷어내 주었다.
신채이는 휴대폰을을 꺼내 이전에 저장해뒀던 여행 명소들을 다시 훑어보며 어디부터 돌아볼지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새 비행기는 착륙했다.
탑승 문이 천천히 열리고 그녀는 깊은숨을 들이쉰 뒤 캐리어를 끌며 수하물 수취대로 향했다.
장시간의 비행으로 조금 지친 탓인지 그녀는 중심을 제대로 못 잡고 그만 캐리어를 옆에 있던 남자의 다리에 부딪히고 말았다.
“죄송해요!”
황급히 고개를 들어 사과하던 순간, 신채이는 멍하니 숨을 멈췄다.
눈앞의 남자는 키가 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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