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전시관의 유리 천장을 통해 석양빛이 바닥 위로 길게 퍼지고 있었다.
강시헌은 작품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신채이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계약서... 이제 사인해도 되겠네요.”
이에 신채이는 손끝을 순간 멈췄다고 곧 빠르게 움직이며 가방을 열고 안쪽에서 계약서를 꺼냈다.
서류는 주름 하나 없이 반듯했다.
“역시 강 대표님, 하신 말씀은 꼭 지키시네요.”
강시헌은 그녀에게서 계약서와 펜을 건네받으며 웃었다.
“채이 씨는 늘 계약서를 갖고 다니나 봐요? 이 정도면 진짜 프로라 할 수 있죠. 저희 회사로 이직할 생각 없어요? 연봉은 임 대표님보다 훨씬 더 드릴 수 있는데.”
그의 농담에 신채이가 피식 웃었다.
“그냥 늘 만반의 준비를 하는 습관일 뿐이에요. 과찬이십니다.”
그 순간, 강시헌이 펜을 내려놓더니 신채이와 시선을 맞췄다.
“그런 채이 씨가... 왜 갑자기 화국을 떠난 건지 궁금하네요.”
주위 공기가 얼어붙는 것 같았고 신채이는 조용히 계약서 조항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박한섭이 담담한 목소리로 ‘이혼하자’고 말하던 순간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 그녀는 천천히 시선을 떨궜다.
“국내에 있으면 마음이 불편해서요. 그래서 아예 밖으로 나와본 거예요.”
“그럼 도망친 건가요?”
장난기 섞인 말투로 물었지만 그녀의 어두운 눈빛이 시야에 들어오자 강시헌은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사실 사람도 전시관의 철골 구조물처럼 깨져도 이어붙이면서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불편한 사람과 불편한 일에서 멀어지는 것, 그것도 살아남는 길 중 하나죠.”
그의 말이 이상할 만큼 마음에 와닿아 신채이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기억이 점점 또렷해질수록 그녀를 괴롭게 만든 장면들도 덩달아 선명해졌다.
수많은 밤, 박한섭 때문에 잠을 설쳐도 신채이는 그 자리에만 머물러 있었다.
떠나는 것도 선택할 수 있다는 걸 아무도 얘기해준 적이 없었다.
“...맞아요.”
그녀는 작게 중얼거렸다. 목이 잠기는 게 느껴졌지만 말소리는 또렷했다.
그리고 그렇게 강시헌이 마지막으로 사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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