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구진성이 갑자기 인내심을 잃고 심가연의 옷깃을 거칠게 찢었다. 조용한 서재에 천이 찢어지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안 돼요.”
심가연은 본능적으로 가슴을 가렸다. 눈물이 결국에는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순간 아기가 뭔가를 느낀 듯 미약한 울음소리를 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아기에게로 향했다.
더욱 수치스러운 건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은 순간 심가연의 가슴에서 젖이 주체할 수 없이 배어 나왔다는 것이다. 얇은 옷에 짙은 얼룩이 생겼다.
구진성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대놓고 비웃었다.
“이 일이 가연 씨한테 잘 맞나 봐요.”
그러고는 울고 있는 아들을 그녀의 품에 조심스레 건네며 명령하듯 말했다.
“얼른 먹여요. 우리 아들 굶기지 말고.”
심가연은 본능적으로 아기를 받아 들었다. 작은 몸이 그녀의 품에 닿은 순간 묘한 익숙함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기를 가슴에 가까이 대자 바로 젖을 물더니 탐욕스럽게 빨기 시작했다.
심가연의 눈빛이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저도 모르게 아기의 등을 가볍게 쓰다듬었는데 동작이 아주 능숙하고 따뜻했다.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구진성의 눈빛이 점점 깊어졌다. 갑자기 심가연의 턱을 잡고 억지로 들어 올리고는 비아냥거렸다.
“꽤 그럴듯한데요?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좋은 엄마인 줄 알겠어요.”
심가연은 자신의 연약함을 보이지 않으려 고개를 돌렸다.
아기는 그녀의 품에서 만족스러운 소리를 내며 조그만 손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문득 그녀의 딸도 젖을 먹을 때 머리카락을 잡는 걸 좋아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기는 배부르게 먹고 깊이 잠들었다.
심가연은 조심스럽게 옷을 정리한 뒤 아기를 요람에 내려놓았다.
“이제 됐나요?”
그녀는 마지막 자존심을 애써 지키며 물었다.
구진성이 아무 말 없이 책상 앞으로 다가가더니 서랍에서 수표 한 장을 꺼내 사인한 다음 그녀 앞에 던졌다.
“2억 줄 테니까 오늘부터 여기서 지내면서 내 아들의 전담 유모로 일해요. 부르면 언제든지 와야 하고요.”
그러고는 이번에는 계약서를 그녀 앞에 던졌다.
심가연은 수표에 적힌 긴 숫자를 본 순간 심장이 멎는 듯했다. 이 돈이면 딸의 수술비와 수술 후 치료비로 충분했다.
그녀는 한참을 고민하다 어렵게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여기서 지낼 수는 없어요. 딸을 돌봐야 하거든요.”
구진성이 서리가 내려앉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심가연을 쳐다보며 코웃음을 쳤다.
“임준석이 집에 없어요? 임씨 가문이 베이비시터 하나 못 구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워졌어요?”
심가연이 입술을 깨물었고 입꼬리에 쓰디쓴 미소가 스쳤다. 임준석은 유이의 존재조차 몰랐다. 만약 알았다면 심가연을 당장 임씨 가문에서 내쫓았을 것이다.
“말해요! 벙어리가 됐어요?”
구진성이 갑자기 다가오더니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검은 두 눈에 냉기가 감돌았다.
“아니면 사랑하는 남편이랑 떨어지기 아쉬운가요?”
그가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심가연은 주먹을 점점 더 꽉 쥐었다. 마지막에는 얼굴을 찡그릴 정도로 아팠다.
“아니에요...”
심가연이 창백한 얼굴로 낮게 말했다.
“제 딸 상황이... 좀 특별해서요...”
구진성이 차갑게 웃으며 손을 놓았고 눈빛에 조롱이 가득했다.
“내 앞에서는 현모양처인 척하지 않아도 돼요. 돈 때문에 날 차버릴 땐 그렇게 매정하더니.”
이 한마디가 날카로운 칼처럼 심가연의 가슴에 꽂혔다. 눈가에 눈물이 맺혀 당장이라도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래. 내가 무슨 자격으로 이 사람의 이해를 바라?’
지금의 구진성은 그녀를 위해 목숨도 기꺼이 내놓는 경호원이 아니라 그녀와 딸의 생사를 쥔 권력자였다.
구진성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엄청난 은혜를 베푸는 것처럼 말했다.
“이렇게 하죠.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빌면 가연 씨 딸도 함께 데려오는 걸 고려해볼게요.”
심가연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유이를 이 집에 데려온다고?’
그 생각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구씨 가문의 의료 자원이라면 딸에게 최고의 치료를 제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이가 그의 딸이라는 걸 알기라도 한다면...
구진성의 독단적인 성격을 떠올리자 유이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 생각에 안색이 더욱 하얗게 질렸다.
심가연은 마른 입술을 적시며 애써 설명했다.
“제 딸은 특별한 간호가 필요해요. 의사 선생님이 익숙한 환경이 낫다고...”
쾅.
구진성이 책상을 내리쳤다. 심가연은 깜짝 놀란 나머지 말이 목에 걸려버리고 말았다.
“심가연 씨!”
그는 이를 악문 채 그녀의 턱을 잡고 음산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내가 지금 흥정하는 것으로 보여요? 딸 데리고 들어오든지, 지금 당장 꺼지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해요.”
심가연은 입술을 파르르 떨며 더는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구진성은 그녀를 밀치고 정장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책상에 던졌다.
“주온 병원의 소아과 전문의 연락처예요. 계약서에 사인하면 내일 바로 진료받을 수 있게 해줄게요.”
금박 명함을 쳐다보던 심가연은 저도 모르게 숨이 가빠졌다.
그녀는 이 전문의를 잘 알고 있었다. 과거 딸의 진료를 위해 예약하려고 온갖 방법을 썼지만 끝내는 실패했다. 딸의 창백한 얼굴이 떠오른 그녀는 드디어 결심을 굳혔다.
“사인할게요.”
심가연은 더는 망설이지 않고 계약서에 사인했다.
구진성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러고는 계약서를 챙기면서 알 수 없는 눈빛을 띠었다.
“내일 아침 9시까지 딸 데리고 여기에 도착해요. 1분이라도 늦으면 계약은 무효입니다.”
...
그날 밤 임씨 가문 별장.
심가연은 정성껏 차린 밥상과 함께 레드 와인까지 준비하고 남편 임준석을 기다렸다.
임준석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바로 다가가 외투를 받아 들며 상냥하게 웃었다.
“왔어?”
임준석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식탁 위의 음식을 훑어보더니 차갑게 말했다.
“나한테 잘 보이겠다고 이렇게 애쓸 필요 없어. 결혼할 때 분명히 말했잖아. 넌 그냥 정략결혼의 도구이고 가족들을 달래기 위한 방패막이라고.”
그의 이런 말에도 심가연은 아무렇지 않은 듯 덤덤한 표정이었다.
“알아. 나 여행 좀 다녀올게. 석 달 정도. 더 걸릴지도 몰라.”
임준석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지만 말투에는 여전히 경멸이 섞여 있었다.
“뭐야? 이젠 또 밀당이라도 하려는 거야?”
심가연이 고개를 저었다.
“오해하지 마. 집에만 있는 게 답답해서 바람 좀 쐬려고 그래.”
그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녀를 몇 초간 쳐다보다가 코웃음을 쳤다.
“마음대로 해.”
그러고는 계단을 올라가며 모퉁이에서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심가연 잘 감시해. 내일부터 뭘 하는지 빠짐없이 싹 다 보고하고.”
다음 날 아침, 심가연은 잠든 유이를 안고 캐리어를 끈 채 구씨 가문 별장 앞에 섰다.
유이의 창백한 얼굴이 그녀의 목에 닿았는데 숨소리가 고양이처럼 미약했다.
“심가연 씨, 도련님께서 서재에서 기다리십니다.”
집사가 문을 열며 유이를 잠깐 쳐다보았다.
심가연이 별장에 발을 내디딘 순간 멀리 떨어지지 않은 수풀 뒤에서 누군가 카메라 셔터를 소리 없이 눌러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