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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심가연이 딸을 안고 서재 문 앞에 섰을 때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문틈으로 보이는 광경에 그녀는 순간 얼어붙었다. 구진성이 창가 앞에 앉아 능숙한 자세로 아기를 안고 있었던 것이었다. 시선을 늘어뜨린 채 긴 손가락으로 아기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자장가를 나지막하게 흥얼거렸다. 아침 햇살이 통유리를 통해 비스듬히 들어와 그의 입가에 머금은 부드러운 미소를 비췄다. 그 모습은 더없이 따뜻했다. 심가연은 문득 그들이 처음 만난 그 해가 떠올랐다. 그녀가 좋아하는 케이크를 사기 위해 비까지 맞으며 줄을 섰다. 온몸이 흠뻑 젖은 채로 케이크 상자를 조심스레 지키던 모습이 지금과 똑같았다. 코끝이 시큰거렸고 보이지 않는 손이 심장을 세게 움켜잡는 것처럼 아팠다. 문밖의 인기척을 들은 구진성이 고개를 들었다. 심가연을 보자마자 눈빛의 온기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대신 익숙한 싸늘함이 그 자리를 채웠다. “뭐 해요? 빨리 안 들어오고.” 쌀쌀맞기 그지없는 말투였다. “애가 배고프다잖아요.” 심가연은 정신을 차리고 서재로 들어갔다. 유이를 요람에 내려놓고 바로 구진성의 품에서 아기를 받아 들었다. 아기는 본능적으로 그녀의 가슴을 찾아 입을 가져갔다. 그 모습에 심가연은 웃으면서 단추를 풀고 젖을 먹이기 시작했다. 요람 속 유이도 젖 냄새를 맡았는지 흐리멍덩하게 눈을 뜨더니 엄마가 다른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모습을 보고는 입을 삐죽거리며 속상한 듯 울음을 터뜨렸다. “으앙.” 당황한 심가연은 한 손으로 젖을 먹이면서 다른 손으로 딸을 달랬다. 품 안의 아기를 간신히 배부르게 먹인 후 아기를 요람에 내려놓고 유이를 안으려 했다. 하지만 너무 급하게 움직인 탓에 발이 꼬여 앞으로 고꾸라졌다. 몸이 균형을 잃은 순간 강철처럼 단단한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얇은 옷 너머로 뜨거운 손바닥이 그녀의 피부에 닿았다. 심가연은 반항할 수 없는 힘에 뒤로 당겨졌다가 단단한 가슴에 세게 부딪혔다. 저도 모르게 가벼운 비명을 질렀다. 단추가 풀려 있는 상태라 하얀 피부가 구진성의 정장에 닿았다. 그의 몸에서 은은하게 풍기는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뜨거운 숨결이 심가연의 목에 닿은 순간 잔잔한 전율이 일었다. 구진성의 숨소리가 눈에 띄게 거칠어졌고 허리를 감싼 손가락을 무의식적으로 조였다. 그는 뜨거운 숨결을 내뱉으며 평소보다 낮게 깔린 목소리로 귓가에 대고 말했다. “가연 씨 몸 이젠 내 아들 거예요. 다쳐서 우리 아들 제때 밥 못 먹이면 쫓겨날 줄 알아요.” 그러고는 손을 확 뗐다. 비틀거리는 심가연을 쳐다보는 두 눈에 알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심가연은 황급히 옷깃을 여몄고 손끝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 닿았던 피부에 남은 뜨거운 감각과 향기가 섞인 숨결이 아직 가시지 않은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엔 조심하겠습니다.” 더는 구진성을 쳐다볼 용기가 없어 몸을 돌려 유이를 안아 들고 달래면서 젖을 먹였다. 배고팠던 유이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급하게 젖을 빨았다. 그녀가 또 떠날까 봐 두려운 듯 작은 손으로 그녀의 옷자락을 꽉 잡았다. 심가연의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고개를 숙여 딸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요람 속 아기는 울지도 않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들을 쳐다봤다. 심지어 손을 뻗어 유이의 발을 잡으려 했다. 두 아이는 뜻밖에도 아주 잘 어울렸다. 아이들을 지켜보던 심가연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따뜻한 미소가 번졌다. 구진성은 옆에 서서 복잡한 눈빛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가슴 속에 알 수 없는 짜증이 차올랐다. 그가 갑자기 차갑게 물었다. “딸 몇 달 됐어요?” 심가연이 흠칫 놀라더니 당황한 기색을 애써 감추고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6... 6개월 됐어요.” 사실 유이는 구진성의 아들과 비슷하게 12개월 정도 됐지만 오랜 병치레로 6개월 된 아기처럼 보였다. 이 점이 오히려 구진성의 의심을 피하게 했다. 구진성이 차갑게 웃으며 날카롭게 말했다. “임준석이랑 사이가 꽤 좋나 봐요? 결혼하자마자 애를 가진 걸 보면.” 심가연은 반박하지 않고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왜 말이 없어요?” 구진성이 눈을 가늘게 뜨며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매정한 여자인 줄만 알았는데 다른 놈한테는 그래도 정을 줬네요?” 그의 말은 날카로운 칼처럼 심가연의 심장에 박혔다. 눈물이 핑 돌았지만 감추려고 고개를 숙였다. “대표님, 작은 도련님한테 젖 다 먹였는데 이만 딸 데리고 방으로 가도 될까요?” 구진성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온몸에서 냉기를 뿜으며 성큼성큼 서재를 나갔다. 심가연은 유이를 안고 황급히 따라갔다. 그들은 2층 안방에 도착했다. 방 안에 구진성의 개인 물품이 가득한 걸 본 심가연은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대표님, 여긴... 대표님 방이 아닌가요?” 구진성이 돌아보며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내 아들은 항상 나랑 같이 자요. 옆에서 돌보려면 당연히 이 방에서 지내야죠.” 심가연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조심스레 말했다. “대표님,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 전 그냥 보육사인데 어떻게 대표님과 한방을 써요? 게다가... 아이 엄마도 오해할 수 있고요.” 그녀를 깊이 쳐다보던 구진성의 눈빛이 더 차가워졌다. “그건 가연 씨가 신경 쓸 일이 아니에요.” 심가연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계속 고집을 꺾지 않았다. “대표님, 제가 작은 도련님이랑 옆방에서 잘게요. 그러면 잘 돌볼 수도 있고 또...” “심가연!”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구진성이 손목을 덥석 잡더니 벽과 그의 사이에 그녀를 가둬버렸다. 그의 눈빛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무슨 배짱으로 자꾸 내 말에 반박하는 거죠?” 손목이 아플 정도로 조여들자 심가연은 벗어나려 발버둥 쳤다. 그런데 그때 품속의 유이가 갑자기 심하게 기침하기 시작했다. 작은 얼굴이 보랏빛으로 변했고 호흡기가 막힌 듯 숨소리가 급박해졌다. “유이야!” 심가연이 재빨리 딸을 안고 등을 두드렸지만 아이의 안색이 점점 나빠졌고 입술마저 푸르게 변했다. “의사! 의사를 불러야 돼요.” 그녀가 구진성을 밀치고 미친 듯이 밖으로 달려나가려던 그때 구진성이 다시 그녀를 붙잡았다. “이거 놔요. 내 딸을 구해야 한다고요.” 심가연은 절박하게 소리치며 그의 팔을 세게 물었다. 입안에 진한 피 맛이 퍼졌다. “진정해요!” 구진성이 심가연을 끌어안고 문밖을 향해 소리쳤다. “안 집사, 당장 진 박사를 불러. 빨리!” 심가연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으면서 목놓아 울었다. 유이를 꼭 안고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제발 살려주세요... 아직 어린애란 말이에요... 제발요...”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본 구진성은 가슴이 뭔가에 찔린 듯 아픔이 밀려왔다. 그녀와 아이를 번쩍 안아 들고 침대 쪽으로 걸어가 낮고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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