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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구진성은 창가에 서서 한참 바깥만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이 뒤엉켜 있었기 때문에 심가연이 이미 방 안에 들어온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이놈아!” 구병호의 호통이 전화기 너머로 터져 나왔다. “괜히 헛걱정만 했잖아. 여자를 멀리한다길래 별일 있나 했더니 이젠 가정부 하나 감싸고 도는 거야? 내 생일잔치 앞두고 할아버지 속 터지게 할 셈이냐?” “할아버지...” 구진성은 급히 목소리를 낮췄다. “괜한 말씀 마세요. 가정부가 혹시라도 할아버지 앞에서 실수할까 봐서예요.” “흥! 그만 둘러대라. 넌 그냥 작정하고 나랑 맞서는 거잖아! 은아랑 약혼하라는 것도 거부하더니, 이번엔 가정부 문제로 또 버티고... 정말 얄미워 죽겠어!” “알겠어요. 데려가면 되잖아요.” 구진성은 결국 물러섰다. 그 순간 구병호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래야지! 이만 끊겠다.” 통화가 끝난 휴대폰 화면을 멍하니 내려다본 구진성은 돌아서다 바로 뒤에 서 있던 심가연과 눈이 마주쳐 흠칫 놀랐다. “언제 들어왔어요?” 들킨 듯 목소리가 높아졌다. 심가연은 입술을 살짝 달싹이며 낮게 말했다. “들어올 때 이미 문 두드렸어요. 아마 통화하시느라 못 들으신 것 같아요.” 그녀는 방금 통화 내용을 못 들은 척하며 구재호에게 미음을 떠먹였다. 아들을 챙기는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보던 구진성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다가갔다. “방금 뭐 들었어요.” 심가연은 숟가락을 잠깐 멈췄다가 곧 다시 아이에게 미음을 먹였다. “구 대표님, 정말 저까지 데리고 어르신 생신잔치에 가실 생각이신가요?” “왜요, 가고 싶어요?” 구진성의 말투에는 은근한 장난기가 배어 있었다. 심가연은 눈살을 모으며 올려다봤다. “제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 같진 않은데요?” 잠시 시선을 돌린 구진성은 무심한 척 말했다. “할아버지께 감기 때문에 못 간다고 전할게요.” 심가연은 그의 옆얼굴을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숙이고 다시 아이에게 미음을 먹였다. 그날 오후, 구진성은 주민아가 의심하지 않도록 일부러 심가연을 병원에 보내 진단서를 받아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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