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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대표님, 자중하세요.” 심가연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그의 말 때문에 곤란해졌는지 아니면 이 자세가 부끄러운지 그녀의 볼과 귓불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반짝이는 눈동자에 구진성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구진성은 지금의 그녀에게서 오랜만에 2년 전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그녀를 놓지 않고 손끝으로 그녀의 가느다란 척추를 어루만졌다. 손이 닿을 때마다 심가연은 뜨거운 것에 데기라도 한 듯 움찔했다. “윤성아...” 심가연은 무의식적으로 그의 2년 전 이름을 불렀다. 목소리는 한없이 부드러웠다. 구진성의 눈빛이 싸늘해지더니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가녀린 허리를 세게 조였다. 그가 무슨 짓을 할까 두려워하던 순간 갑자기 심가연을 세게 밀쳤다. 그 바람에 심가연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다가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그의 눈빛과 마주했을 땐 얼음처럼 차가웠고 어떤 욕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앞으로 다시 그 이름을 불렀다간 쫓겨나는 수가 있어요.” 한기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구진성이 매정하게 돌아섰다. 조금 전 은밀했던 순간이 환상 같았다. 심가연은 계단을 오르는 구진성의 뒷모습을 보며 입술을 굳게 다물었고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마음을 진정하려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2년 전 그녀만 바라보던 윤성은 이미 그녀의 손에 죽었다. 안방으로 돌아와 보니 구진성이 침대 머리에 기대 서류를 보고 있었고 그녀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구재호의 보육사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방에서 지내는 건 너무나 불편했다. 심가연은 잠옷을 여미고 아기 침대 옆의 접이식 침대에 누웠다. 잠든 구재호를 보면서 미소 지으며 잠을 청했다. 오랫동안 젖을 먹지 않아서인지 구재호는 옆에서 익숙한 냄새가 풍겨와 오히려 잠을 설쳤다. 심가연이 막 잠들었을 무렵 아기의 가느다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일어나 아기를 안고 등을 부드럽게 두드리며 자장가를 불렀다. 구재호는 그녀 품에서는 조용해졌지만 아기 침대에 내려놓으면 5분도 안 되어 다시 울기 시작했다. 몇 번을 반복한 끝에 심가연은 구재호가 침대에 누우면 불안해한다는 걸 알아챘다. 고개를 들다 구진성과 눈이 마주쳤다. 어두운 조명 아래 그는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심가연은 입을 꾹 다물고 계속 구재호를 달랬다. 구재호는 그녀의 품에서 이내 깊이 잠들었다. 침대 위의 구진성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모습을 빤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불을 끄고 몸을 돌려 누웠다. 방 안이 어둠에 잠겼고 창밖의 달빛만이 아이를 안고 접이식 침대에 웅크리고 있는 심가연을 비췄다. 구진성이 자는 데 방해될까 봐 심가연은 구재호를 안은 채 밤새 접이식 침대에 앉아 있었다. 이른 아침, 햇살이 얇은 커튼을 통해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간만에 푹 잔 구진성은 아주 상쾌하게 깨어났다. 그런데 접이식 침대를 보자마자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심가연이 구재호를 안고 다리를 구부린 채 벽에 기대 자고 있었던 것이었다. 긴 머리가 살짝 흐트러졌고 아침 햇살이 창백한 얼굴에 떨어져 유난히 연약해 보였다. 몇 걸음 다가가 아들을 안으려 했는데 아들의 손을 건드리자마자 심가연이 놀라 깨어나며 구재호를 품에 끌어안았다. 눈을 뜨고 나서야 구진성이 바로 앞에 있는 걸 봤다. “대표님, 좋은 아침이에요.” 조금 전까지 부드럽고 걱정 어렸던 눈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차가움이 그 자리를 채웠다. “이러다 감기 걸려요.” 심가연은 순간 멍해졌다. 그가 그녀를 걱정하는 줄 알았는데 구재호를 조심스레 안아 드는 모습을 보고는 아들이 감기 걸릴까 봐 걱정했다는 걸 깨달았다. “죄송해요. 작은 도련님이 울면 대표님이 못 주무실까 봐 안고 있었어요. 만약 믿어주신다면 다른 방에서 작은 도련님을 돌봐도...” “가연 씨처럼 매정한 사람을 어떻게 믿어요?” 심가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구진성이 차갑게 가로챘다. 그녀는 변명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구진성은 구재호를 아기 침대에 내려놓고는 실망한 기색의 그녀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쌀미음 만들러 안 가요?” 심가연은 가볍게 대답하고는 주방으로 가서 구재호의 쌀미음을 준비했다. 구재호에게 쌀미음을 먹이던 그때 구진성이 깔끔한 차림으로 2층에서 내려왔다. 아침을 먹고 집사에게 몇 마디 지시한 뒤 출근했다. 집사 주민아는 구재호가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 구재호를 안고 가려다가 심가연의 의아한 눈빛을 보고는 차갑게 말했다. “대표님 지시예요. 수유 시간 외에는 대표님이 돌아올 때까지 작은 도련님 가까이 가서는 안 됩니다.” 그러고는 구재호를 안고 가버렸다. 주민아의 말에 심가연은 가슴이 저렸다. ‘내가 어린애한테 해코지라도 할까 봐 그러는 거야? 애를 볼 필요 없으면 나야 한가하고 좋지, 뭐.’ 유이를 보러 의료실로 가려던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해보니 임준석이었다. “준석아.” 다정한 말투의 심가연과 달리 핸드폰 너머의 목소리는 차갑기만 했다. “어디야?” 심가연은 가슴이 철렁했다. 죄책감을 억누르며 고분고분 대답했다. “말했잖아. 여행 다녀오겠다고.” “그래? 그런데 누가 널 경원에서 봤다던데?” 의심 가득한 임준석의 목소리에 심가연은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었다. 만약 그녀가 구씨 가문 별장에서 보육사로 일한다는 걸 임준석이 알게 된다면 유이의 존재를 알게 될 뿐만 아니라 이혼까지 하려 할 것이다. 지금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이혼하면 머물 곳조차 없었다. “잘못 봤겠지. 나 지금 연남이야. 돌아갈 때 특산물 좀 사갈까?” 심가연이 호의를 보여도 임준석은 전혀 감동하지 않았다.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조롱하듯 말했다. “좋지. 기다릴게, 그럼.” 그러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심가연은 핸드폰을 보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임준석이 그녀가 경원을 떠났다고 믿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의료실로 향했다. 진민수는 유이의 상태가 안정되어 산소호흡기를 쓸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상태가 좋지 않아 최대한 빨리 수술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유이를 안고 안방으로 돌아가려던 그때 갑자기 주민아가 나타나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작은 도련님 배고플 시간이에요.” 심가연은 주민아의 혐오 어린 표정을 못 본 척하며 왼손으로는 유이를, 오른손으로는 구재호를 안았다. “지금 바로 젖 먹일게요.”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게 구진성의 방으로 들어갔다. 주민아는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안방 문턱을 감히 넘지 못했다. 구진성은 그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그의 방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평소 청소도 그가 집에 있을 때만 가능했다. 그런데 심가연은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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