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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송현우는 어딘지 모르게 날이 서 있었다. 그의 옆자리에는 진아린이 잠들어 있었고 원래 내 것이었을 담요가 그녀의 몸을 다정히 덮고 있었다. 침묵이 흘렀다. 어쩌면 우리 사이엔 이미 어떤 말도 남아 있지 않은지도 몰랐다.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나는 모든 것을 알았다. 송현우는 진아린을 위해 내 고양이를 다른 사람에게 줘버렸고 집안의 모든 보리 흔적을 지워버렸다. 보리는 보이지 않았고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송현우가 갈가리 찢어 쓰레기통에 처박은 이혼 합의서뿐이었다. 어제 내가 책상 위에 올려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내 고양이, 아니 우리의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부터 입에 올렸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담담한 말투였다. “아린이가 고양이 털에 예민해서 보리는 입양 보냈어. 너보다 더 좋은 주인 만날 거니까 안심해.”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심장이 절벽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기분이었다. “뭐라고?” 보리는 3년 전, 비 오는 날 주워온 아이였다. 밤새도록 쏟아지는 비에 녀석의 작은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나는 서울 시내의 동물병원을 전부 뒤졌지만 모두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 거라고 했다. 그래서 잘 묻어주려 했더니 녀석은 기적처럼 살아남아 지금처럼 동글동글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자랐다. 송현우는 담배를 물었다. 자욱한 연기 속에 그의 감정은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그는 화제를 돌렸다. 그는 쓰레기통 속 찢긴 종잇조각을 가리키며 비웃는 얼굴로 말했다. “나랑 이혼하겠다고? 윤지아, 미친 짓 좀 그만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나와 아린이는...” 때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송현우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나를 볼 때는 시선을 피했다. “보리가 없어졌대.” 나는 온 거리를 헤매며 녀석이 있을 만한 곳은 전부 다 뒤졌다. 그러다 마침내 골목 끝에서 이미 숨이 멎어가는 보리를 발견했다. 그곳은 내가 보리를 처음 주웠던 곳이었고 이제는 보리가 영원히 잠들 곳이 되었다. 나는 멍하니 보리를 안아 들었다. 왠지 처음에 주웠을 때보다도 더 작아진 것 같았다. 아무런 무게도 느껴지지 않는 가벼운 몸이 그저 잠든 것만 같았다. 목에는 내가 새로 바꿔준 이름표가 아직 걸려있었지만 이제는 핏자국으로 얼룩져 글씨조차 보이지 않았다. 눈가가 시큰해지더니 참았던 눈물이 기어코 터져 나왔고 오랫동안 억눌렀던 감정이 그 순간 폭발했다. 송현우의 표정은 뻣뻣하게 굳어 있었고 죄책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무의식적으로 내 손을 잡으려 했지만 나는 뿌리쳤다. “송현우, 이게 네가 말한 ‘잘 지내는’ 꼴이야? 네가 뭔데 내 고양이를 멋대로 남한테 줘. 그게 그렇게 싫었으면 내가 데리고 나갔으면 됐잖아. 송현우, 너 왜 끝까지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나 가지고 장난치니까 재밌어? 아니면 이게 네 그 싸구려 악취미 같은 거야?” 붉게 충혈된 내 눈을 마주한 송현우는 처음으로 할 말을 잃었다. 보리의 차가운 체온을 느끼자 견딜 수 없는 피로감이 몰려왔다. 코를 훌쩍이며 나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이혼. 생각할 것도 없어. 최대한 빨리 도장이나 찍어.” 그 말을 끝으로 온몸의 힘이 풀리며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다시 의식이 돌아왔을 때, 나는 병원 침상에 누워있었다. 다만 송현우는 보이지 않았고 젊은 간호사 한 명만이 내 곁을 지키고 있었다. 내가 눈을 뜬 것을 확인한 그녀는 진료 기록서를 건네주었다. 나를 향한 그녀의 눈빛에는 연민이 어려 있었다. “보호자분도 참, 이렇게 큰일이 생겼는데...” 그 뒤로 간호사가 무슨 말을 했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오직 진료 기록서 위의 몇 줄만이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을 뿐이다. 순간 숨이 가빠지고 걷잡을 수 없이 흐트러졌다.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몇 걸음 옮기지 못하고 비틀거리다 쓰러질 뻔했다. 발이 푹신한 솜 위를 걷는 것처럼 중심을 잡을 수 없었고 덩달아 생각까지도 흔들리며 초점을 잃어갔다. 산부인과 복도 저편, 송현우가 진아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히고 있었다. 그의 얼굴엔 행복한 미소가 만연했다. 나는 무엇에 홀린 듯 그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가 구석으로 가 전화를 받는 것을 지켜봤다. “송현우, 어디야?” “오늘 로펌에 일이 좀 있어서, 깨어났으면 뭐 좀 챙겨 먹어. 간병인 불렀으니까.” 다음 순간, 송현우는 진아린을 흘끗 보더니 무언가 결심한 듯 다정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아니다, 병실에서 기다려. 일 끝나자마자 바로 갈게.” “그래.” 나는 짧게 대답하고는 손에 쥔 진단서를 오랫동안 반복해서 들여다봤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암 말기로 진단되었으므로 분만을 중단하고 치료를 우선적으로 진행할 것을 권고함.] 글자 하나하나가 비수처럼 내 가슴에 박혔다. 나는 복도를 유령처럼 떠돌다가 누군가의 단단한 가슴에 정면으로 부딪쳤다. 진단서가 바닥에 떨어졌고 그걸 주운 건 서이준이었다. 그는 무언가 말하려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이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 사실, 송현우한테 알리지 않을 거야?” 나는 복도 너머의 그를 바라보며 가슴 깊이 숨을 들이켰다. 그에게 말해줄까 생각 안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게 이 일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됐어. 그냥 그 인간한테서 최대한 빨리 도망쳐서 내 마지막 시간이라도 제대로 살고 싶어. 서 선생, 비밀로 해줄 거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등 뒤에서 송현우의 의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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