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3화

밤바람이 스치자 여자의 긴 머리카락이 살랑이며 흩날렸다. 먹물을 풀어놓은 듯 은은하고 고요한 머릿결은 어둠 속에서 더욱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밖에 바람이 세네요. 제가 모셔다드릴게요.” 차서준이 조심스럽게 차 문을 열자 윤채원은 마지못해 조용히 차에 올라탔다. 차가 아파트 단지 앞에 도착했을 무렵, 차예원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 “아빠, 우리 저녁 뭐 먹어요? 아직 밥도 안 먹었잖아요.” 윤채원의 시선이 맞은편의 오래된 작은 만둣집에 머물렀다. 몇 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녀의 단골 가게였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감사의 뜻으로 차서준에게 식사를 제안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녀는 습관처럼 창가 자리를 둘러보았다. 늘 창가 쪽을 선호하던 그녀답게 자연스러운 시선이었다. 창문은 오래되어 흐릿했고 햇빛에 바랜 장식은 여전히 그 자리에 붙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가장 좋아하던 그 자리에 누군가 먼저 앉아 있었다. 짧은 검은 머리를 자연스럽게 넘긴 남자가 몇 가닥의 머리카락을 이마 앞으로 흘린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깊고 날카로운 눈매에 높은 콧대, 무심한 듯 섬세한 옆모습, 낯설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는 검은 터틀넥 위에 고급스러운 짙은 회색 코트를 느슨하게 걸치고 있었고 소매를 살짝 걷은 팔목엔 절제된 디자인의 세련된 손목시계가 빛나고 있었다. 등받이에 기대앉은 그는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그의 짙은 눈동자가 윤채원 뒤에 서 있는 차서준을 한번 훑고 지나가더니 이내 그녀에게로 향했고 다시 한번 그녀 뒤편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윤채원은 놀란 듯 멈칫하다가 이내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윤아린은 그 남자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이내 윤채원의 손을 꼭 잡았다. 그때, 주인아주머니가 다가왔다. “지금 식사 시간이라 자리가 다 찼어요. 저기 선생님이랑 합석하시면 어때요? 내가 의자 하나 더 가져다줄게요.” 아주머니는 윤채원과 그 남자가 예전부터 자주 함께 식사하러 왔던 걸 기억하고 있었고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이미 의자를 가져다 놓았다. 차서준도 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