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화
한 마을에는 언제나 수다스러운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윤채원이 마을로 들어서자 누군가 물었다.
“어느 집 친척 찾아왔냐?”
윤채원은 대꾸하지 않았다.
양손에 든 짐이 묵직해서 곧장 골목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외할머니 송설화의 집은 골목 깊숙한 곳, 붉은 철문이 달린 오래된 집이었다.
열쇠를 돌리자 마당에서 외할머니가 빨래를 하고 있었다.
발치에는 두 마리 고양이가 웅크리고 있었다.
윤채원을 본 외할머니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손을 털며 일어섰다.
“이 계집애야, 어쩐 일로 갑자기 왔냐. 미리 말이라도 좀 하지.”
윤채원은 급히 다가가 손에 든 짐을 내려놓았다.
“제가 세탁기 사드렸잖아요. 이렇게 추운데 왜 손빨래하세요?”
외할머니는 코웃음을 치듯 말했다.
“겨우 두 벌 뿐인데 전기만 아깝지.”
윤채원은 외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세월이 새겨진 손등, 나무뿌리처럼 굽은 손가락.
순간, 가슴이 저릿했다.
눈을 감으면 어린 시절이 선명히 떠올랐다.
외할아버지가 살아 계시던 때, 네 살 무렵.
그때 송철용도 건강했고 방미영의 얼굴에도 미소가 남아 있었다.
송예린은 윤채원보다 두 달 먼저 태어났고 둘은 마당에서 늘 함께 뛰놀았다.
여름날이면 작은 나무 상을 펴고 온 가족이 마당에서 식사했다.
연기가 섞인 햇살, 웃음소리, 그리고 집안 가득한 평화.
그날 밤, 윤채원은 외할머니 집에서 묵었다. 방은 어릴 적 늘 지내던 바로 그 방이었다.
“며칠 전에 예린이가 약혼했단다. 성대하게 치렀더구나. 예린이도 많이 변했고 신랑 집안도 괜찮다더라.”
윤채원은 가지도 않았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살짝 고개만 끄덕였다.
외할머니는 더 묻지 않았다.
손녀의 마음을 아는 듯, 세월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끼는 듯.
눈앞의 손녀를 보며 문득 젊은 시절의 딸, 그러니까 윤채원의 엄마가 겹쳐 보였다.
딸은 강단이 있었고 손녀는 부드러워 보이지만 그 뿌리는 같았다.
“채원아, 도준이랑은 잘 지내니? 감정은 괜찮아?”
예전 윤채원은 외할머니를 안심시키려 결혼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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