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화 아이를 갖자

남자의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귓바퀴에 닿았고 목소리는 모래를 머금은 듯 허스키했다. “날 봐봐.” “임가윤, 내가 누군지 똑똑히 보라고.” 방금 찬물에 의해 꺼진 뜨거움이 다시 뼈 사이로 솟아올랐고 이전보다 더 강하게 타올랐다. 임가윤은 정신이 혼미해졌고 본능적으로 손을 내밀어 그녀를 안정시킬 수 있는 차가운 곳을 찾으려고 했다. 손끝이 미끈미끈한 차가운 옷감에 닿았고 그것은 최고급 맞춤 양복의 질감이었다. 그녀는 애써 눈을 떴고 남자의 젖은 양복을 똑똑히 보게 되었다.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녀는 손을 거두었다. 눈앞의 남자는 서지강이 아니었다. 서지강은 양복을 입지 않는 사람이니까. 순간, 두려움이 그녀의 심장을 꿰뚫었고 그녀는 어깨를 감싼 채 필사적으로 뒤로 물러서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건드리지 말아요. 저리 가요...” 그러나 몸 안의 그 사악한 불길은 점점 더 강렬해졌고 마치 그녀의 온몸을 재로 만들어 버릴 것 같았다. 더는 참을 수 없었던 그녀는 손톱이 살에 박힐 정도로 자신의 팔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강하게 깨물며 통증으로 정신을 차리려고 했다. 눈이 빨개진 남자는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고 그녀의 입술을 어루만졌다. “임가윤, 자신의 몸에 상처 내지 마.” “내가 도와줄게.” “싫어요.” 어디서 생긴 힘인지 그녀는 그를 세게 밀어냈다. “제발 가까이 오지 말아요. 부탁이에요.” 차가운 벽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그녀는 온몸이 흠뻑 젖었고 긴 머리카락이 얼굴에 엉망이 된 채로 붙어있었으며 그녀의 얼굴에는 물인지 눈물인지 구분할 수 없는 액체가 흐르고 있었다. “남편이 있어요. 저희 남편은 서지강이에요.” “난 남편을 배신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제발 나 좀 놔줘요.” 남자는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그의 눈동자에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흠뻑 젖은 셔츠를 찢었고 단추가 튕겨 나가더니 탄탄한 복근이 훤히 드러났다. 성큼성큼 다가가서 여인을 품에 안은 후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