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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화

이건 예전엔 단 한 번도 없었던 대우였다. 8년 동안, 고건우는 언제나 관계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고 진한나는 그와의 사랑에만 몰두한 나머지 점점 자신을 잃어갔다. 진한나는 은근한 미소로 눈빛 속 비웃음을 감췄다. “그럼, 제가 뭘 좋아하고, 뭘 마시는지 아직 기억하고 있어요?” 고건우는 순간 난처해졌지만 입술은 여전히 다정하게 움직였다. “한나야, 네가 원하는 게 뭐든, 내가 점원 불러서 시켜 줄게.” 역시 그는 기억하지 못했다. 진한나의 입가에 싸늘한 웃음이 스쳤다. 진한나는 개의치 않은 듯 직접 점원을 불러 능숙하게 주문했다. “역시 잊었네요. 제가 라테를 좋아한다는 걸. 예전엔 제 삶이 너무 달콤하게만 느껴져서 일부러 씁쓸한 걸 찾곤 했어요. 그래야 균형이 맞고 달콤함이 너무 빨리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요. 나중에는 우리만의 카페를 열 계획도 있었어요. 문 열고 싶을 땐 열고, 닫고 싶을 땐 닫아버리고. 당신을 곁에 두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이젠 다 옛일이 됐네요.” 진한나는 말을 이어가면서도 내내 고건우의 표정을 살폈다.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자 예상대로 그의 얼굴에 연민과 죄책감이 드리워졌다. “그동안 일 때문에 바쁘다 보니 너를 챙기지 못한 건 사실이야. 하지만 앞으로는 시간이 많아. 예전에 약속했던 것들을 하나씩 다 지켜 나가면 되잖아.” 고건우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그녀와 더 가까워지고 싶어 했다. “한나야, 앞으로 네가 원하는 게 뭐든, 내가 모두 들어줄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든 해 줄 거야.” ‘앞으로?’ 그 말이 고건우의 입에서 나온다는 게, 진한나에겐 우스울 따름이었다. 속으로는 비웃음이 치밀어 올랐다. 정말로 그녀를 사랑했다면 헤어진 뒤에도 협박 따윈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명예까지 짓밟아가며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 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시각, 하연우는 부하로부터 두 사람의 만남 소식을 듣자마자 일을 팽개치고 차를 몰고 달려왔다. 거리 건너편 차 안에 있던 그는 유리창 너머로 고건우를 향해 환히 웃는 진한나의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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