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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말도 안 돼

사람들의 움직임에 의기양양하던 윤소민도 어리둥절해졌다. 의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한껏 높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말이 돼? 전교 30등. 국어 만점, 영어 만점...” 윤소민은 아래로 읽어 내려갈수록 점점 믿을 수가 없었다. “말도 안 돼. 네가 어떻게 이런 등수를 받을 수 있어?” 그녀의 얼굴에 불신과 분노가 서려 있었다. 심지어 그녀를 따르던 껌딱지들까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나를 쳐다봤다. 조금 전까지 나를 비웃던 학생들은 새로 몰려든 학생들의 탐색 어린 시선에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등수를 확인한 나의 입가에 미소가 새어 나왔다. 적어도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다. 내가 자리를 떠나려던 그때 윤소민이 앞을 가로막았다. “송은솔, 너 커닝한 게 틀림없어.”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돌아봤다. “맞아. 무조건 커닝했어. 그렇지 않고서야 한 번에 성적이 이렇게 많이 오른다는 게 말이 돼?” “커닝한 게 분명해.” ... 주변에 욕설이 끊이지 않았다. 내가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째려보자 윤소민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나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내가 커닝했다고? 증거 있어? 아니면 내가 시험장에서 감시카메라랑 선생님을 무시하고 주서훈의 답안을 베꼈다는 말이야?” 나는 웃으면서 되받아친 다음 윤소민에게 물었다. “아니면 서훈이가 나한테 베낄 기회를 줬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 질문에 윤소민은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만점인 과목들을 주서훈도 만점을 받았다. 학교에서 주서훈이 나를 싫어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늘 원칙을 고수하는 주서훈이 싫어하는 학생에게 답안을 통째로 건네줄 리가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말이야. 본인이 노력하지 않으면서 남들도 다 똑같을 거라고 지레짐작하더라. 여기서 남을 의심할 시간에 들어가서 문제나 더 풀어보는 게 낫지 않겠어?” 나는 거침없이 말을 내뱉은 뒤 자리를 뜨려 했다. “거기 서.” 바로 그때 누군가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서훈이 인파를 헤치고 걸어오더니 먼저 성적표를 훑어봤다가 나를 쳐다봤다. “요즘 왜 그래? 성적이 왜 이렇게 많이 떨어졌어?” 나는 순간 멍해졌다. ‘무슨 뜻이지? 분명 엄청 많이 올랐는데 떨어졌다니?’ 주변의 학생들도 어리둥절하긴 마찬가지였다. 주서훈은 나의 성적이 만족스럽지 못한 듯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러고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나의 성적을 가리켰다. “수학이랑 영어는 괜찮은데 물리랑 화학이 아직 많이 부족해.” 말을 듣지 않는 학생을 혼내는 듯한 말투였다. 내가 반박하기도 전에 주서훈은 나의 총점과 등수를 보더니 마지못해 인정한다는 듯 덤덤하게 말했다. “그래도 뭐 노력은 꽤 했나 보네. 큰소리친 건 아니었어.” 말을 마친 그는 서로의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는 학생들을 뒤로한 채 휙 가버렸다. 그 자리에 서 있던 나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냉온탕을 왔다 갔다 하는데? 대체 무슨 뜻이지? 먼저 혼냈다가 다시 칭찬해줬어.’ 나는 열여덟 살의 주서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잡념들을 털어냈다. 나에게 중요한 건 주서훈에게서 멀어져 나의 인생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었다. 수능을 한 달 앞둔 학교는 극도의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이 중요한 시점에 성주희는 또 나를 귀찮게 했다. “은솔아, 오늘 저녁에 연회가 있는데 엄마랑 같이 가자. 무조건 가야 해.” 성주희가 화려한 드레스를 들고 거절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엄마, 저 곧 수능이에요. 가기 싫어요.”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곧 수능이니까 데려가는 거야. 시야를 넓히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나중에 너한테 도움이 되지.” 성주희는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웠다. “네 아빠의 중요한 사업 파트너 중에 임씨 가문 사람이 있는데 그분도 오늘 온대. 그분의 아들이 너랑 동갑이야. 이름이 임효재라고 아주 훌륭하다고 들었어. 친구끼리 알아가면 좋잖아.” 어머니를 이길 수 없었던 나는 결국 순순히 드레스를 갈아입고 화장을 한 뒤 연회장으로 향했다. 연회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연회장에 도착한 후 구석 자리를 찾아 앉았다. “안녕하세요. 혹시 송은솔 양?” 옆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흰색 정장을 입은 남학생이었다. 얼굴이 점잖고 잘생긴 데다가 친근한 미소까지 띠고 있었다. “난 임효재라고 해요.” 그가 자신을 소개했다. ‘엄마가 말했던 그 훌륭한 애가 바로 얘구나.’ 확실히 잘생기긴 했다. 주서훈에게 전혀 뒤지지 않는 외모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세요.” 임효재는 생각보다 수다스러운 사람이었다. 나와 학교 얘기, 앞으로의 계획 등을 아주 편안하게 말했다. 주서훈과 함께 있을 때마다 느꼈던 억압감이 전혀 없었다. 한참 얘기하던 중 멀지 않은 한 곳으로 시선이 향했다. 어머니가 한 사모님과 무척이나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얼굴에 의기양양함이 가득했다. 나는 가끔 들려오는 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 은솔이는 참 복도 많아요. 어릴 때부터 서훈이랑 사이가 좋았거든요...” “그러게 말이에요. 둘이 잘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는 들고 있던 주스 잔을 꽉 쥐었다. ‘또 주서훈 얘기를 하고 있었어?’ 바로 그때 입구 쪽에 있던 사람들이 움직이자 많은 이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주서훈이 안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엄마가 날 여기로 데려온 진짜 목적이 주서훈 때문이었구나.’ 나와 임효재를 붙여놓은 건 남들에게 나에게도 다른 남자가 있을 수 있다는 허상을 보여주어 주씨 가문 앞에서 나의 가치를 높이려는 수작에 불과했다. 전생의 악몽이 다시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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