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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헛된 꿈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옆에 있던 임효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주서훈, 여자를 대할 때는 부드러워야 한다는 거 몰라? 지금 이런 태도는 아주 무례하게 비칠 수 있어.” 주서훈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내가 아는 그라면 지금쯤 분노가 극에 달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내 불이 붙은 것처럼 폭발했다. “네가 뭔데 이래라저래라야? 나랑 은솔이 사이에 끼어들지 마.” 너무나 익숙한 한마디였다. 전생에 주서훈이 내게 자주 하던 말이었다. “송은솔, 나랑 소민이 사이에 끼어들지 마.” 이 말의 당사자가 내가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느껴지는 분노는 똑같았다. “주서훈, 말조심해. 효재 선배는 내 친구야. 그리고 우리 둘 관계가 아직 그 정도로 친한 건 아니니까 제발 자중해.” 주서훈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뭐라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 “이만하자. 앞으로 공부하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 어쨌든 우린 친구잖아.” 나는 그를 싸늘하게 쳐다봤다. “필요 없어. 앞으로 별일 없으면 나한테 말 걸지 마. 최대한 부딪치지 않는 게 서로한테도 좋아.” 뒤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한 탓에 제대로 쉬지 못해 짜증이 극에 달했다. 주서훈이 어두운 얼굴로 손을 들어 올린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 모습을 본 임효재가 한 걸음 나서서 나의 앞을 막아섰다. 주서훈은 흠칫했다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는 결국 휙 가버렸다. 시간을 얼마나 지체했는지 연회장에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이미 뿔뿔이 흩어진 뒤였다. 임효재 역시 이 상황을 예상치 못한 듯했다. 우리의 눈이 마주친 그때 나는 나도 모르게 헛기침했다. “미안. 잘 진행되던 연회가 나 때문에 다 망쳤어.” “오늘 벌써 몇 번이나 사과했어. 나한테 그렇게 예의 차릴 필요 없어.” 임효재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내가 데려다줄게.”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나의 걸음걸이를 맞추려고 임효재는 일부러 늦게 걸었다. 우리가 문 앞에 도착했을 때 부모님은 길가에 서서 옆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실 나는 예전부터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어른들은 어찌 그리 할 말이 많은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낯선 사람들과 저렇게 편안하게 대화할 자신이 없을 것 같았다. 성주희도 내가 나오는 걸 봤다. 다만 내 옆에 임효재가 서 있는 걸 보고는 기쁨의 빛이 조금 줄어들었다. “이모, 산책하느라 시간을 미처 살피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임효재는 참으로 예의가 바른 사람이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러했다. 그는 주서훈보다 센스가 있었고 머리도 똑똑했다. 아무튼... 모든 면에서 주서훈보다 나았다. 그가 성주희에게 한 말은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려는 의도였다. 아무래도 나는 아직 열몇 살짜리 애니까. 성주희는 밖에서는 항상 점잖았다. 남들 앞에서 체면 따위 무시하고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괜찮아. 원래 즐기러 나온 건데 뭐. 너도 일찍 집에 들어가. 갈 때 조심하고.” 차 안, 내가 조수석에 앉고 성주희가 뒤에 앉았다. 차에 시동을 걸자마자 역시나 예상대로 성주희는 나의 행동에 대해 꾸짖기 시작했다. “너 오늘 왜 그랬어? 서훈이랑 관계를 잘 다져야지. 둘이 싸우는 것 같던데. 정말 싸웠어?” 이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성주희가 어떤 사람인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또다시 이런 말을 들으니 어쩔 줄을 몰랐다. 조수석에 조용히 앉아 성주희의 꾸지람을 들었다. 반박도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보면서 복잡한 생각에 잠겼다. “당신처럼 애를 가르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제발 좀 정상적으로 굴면 안 돼?” 송찬혁이 성주희의 옆에 앉아 있었다. 내 편을 드는 것이라기보다 단지 성주희의 교육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여겼고 성주희를 약 올리는 것을 즐기는 편이었다. 두 사람이 갑자기 교육 방식을 두고 논쟁하기 시작하더니 목소리도 점점 커졌다. 나는 앞 좌석에서 운전기사와 눈을 마주쳤다가 이내 시선을 돌렸다. “쟤는 너희 성씨 가문 사람들을 닮았어.” 두 사람의 갈등은 이 말에서 다른 주제로 번져나갔다. 짜증이 난 나는 더는 참다못해 한마디 끼어들었다. “됐어요, 그만 좀 싸우세요. 계속 이렇게 싸우면 내가 하고 싶은 얘기도 못 하잖아요... 난 내 노력으로만 살고 싶어요. 엄마 아빠처럼 사업 때문에, 회사 때문에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정략결혼 하고 싶지 않아요. 처음에는 그나마 예의를 지키다가 나중에는 서로를 혐오하게 되잖아요.” 오늘 나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평소보다 더 냉랭했다. “난 엄마 아빠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 나의 말이 끝나자 뒷좌석의 두 사람이 예상대로 조용해졌다. 송찬혁은 입을 꾹 다물고 창가에 손을 기댄 채 밖을 내다봤다. 성주희는 내가 반박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는지 잠시 멍해지더니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차 안에 성주희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백미러로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 “너 그거 헛된 꿈이야. 아직도 좋은 대학교에 가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잘 살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성주희의 말에 조롱과 비아냥이 가득했다. 이 점은 그래도 송찬혁과 아주 비슷했다. 둘 다 비아냥거리는 걸 좋아했다. “설령 네가 좋은 대학교에 간다 한들 무슨 소용이야? 서훈이한테 매달리는 것보다 못할걸? 적어도 그렇게 하면 부귀영화를 얻을 수 있어. 우리 집에도 도움이 되고.” 성주희는 자신의 계획에 매우 만족하는 듯했다. 나는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이제 성주희는 정말 구제 불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귀하면서 지난 생의 결말을 알고 있었기에 바꾸고 싶었다. 한 남자에게 의지하여 이 세상에서 필요한 것들을 얻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독립적인 개체이고 나만의 꿈이 있다. “네가 그런 생각을 한 이유가 요즘 인터넷에서 나쁜 것들을 너무 많이 봐서 영향을 받았거나 아니면 이번에 시험을 잘 봐서 우쭐거리고 있거나 둘 중 하나야.” 성주희는 나의 행동을 꾸짖었다. 늘 이런 식이라 이젠 익숙했다. 그런데 이번에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그녀에게 반박했다. “내가 주서훈이랑 결혼하면 무조건 행복할까요? 엄마 아빠처럼 매일 싸우기만 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주서훈이 윤소민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엄마도 알잖아요.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면 안 되죠.” 나는 고개를 돌려 성주희를 쳐다봤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당황하길 바랐다. 그러면 나의 말이 옳다는 증거가 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성주희의 두 눈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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