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김우연이 경찰에 신고하려 하자 김명헌은 바로 다급해졌다. 등줄기에 차가운 땀이 확 배어 나와 옷을 적셨다.
조서아의 보석이 어디로 갔는지,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뿐이었다. 당연히 그가 훔친 것이었으니까. 하나는 사치스럽게 쓰려고, 또 하나는 김우연을 모함하려고 그랬다.
어차피 그런 물건들은 조서아의 눈에도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김씨 가문에는 돈이 넉넉했고, 조서아가 한 달에 사들이는 보석값만 해도 수천만 원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보석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도 몰랐다.
바로 그때, 김명헌이 막 입을 떼려는 순간 김병훈이 먼저 소리쳤다.
“김씨 가문 망신을 아예 만천하에 떨치고 싶어?”
그제야 김우연이 살짝 시선을 들고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갈 거면 깨끗하게 나가! 김씨 가문 물건을 들고 나가면서 뭘 그리 도도한 척이야? 배짱 있으면 네 손으로 내놔. 그리고 우리랑은 완전히 끝내. 그럼 내가 그나마 너를 인정은 해 주지!”
김병훈의 말은 칼날같이 사정없이 몰아붙였다.
김우연이 집안 돈을 들고 나가기만 하면 주도권은 김씨 가문이 쥐게 된다. 집 나가네 뭐네 해도, 결국 코미디가 되는 것이다. 김우연도 영영 김씨 가문을 못 벗어나게 된다.
다른 사람들도 김병훈의 뜻을 눈치채고는 비웃음을 흘리며 차갑게 김우연을 노려봤다. 과연 김우연이 내놓을지, 두고 보자는 태도였다.
숨겨 둔 돈을 내놓으면 바깥에서는 절대 버티지 못한다. 그러나 내놓지 않으면 훗날 집안에서 캐고 들어갈 때 그는 변명조차 못 할 것이다.
쏟아지는 시선의 의미를 김우연이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 김씨 가문이란 무엇이던가? 그의 인생을 망가뜨린 장소일 뿐, 붙들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미련도 없고, 더 엮이고 싶지도 않았다.
이윽고 김우연은 몸을 돌려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어? 우연 형이 진짜 돈을 숨겼다고요? 그럴 리가 없어요!”
김명헌은 일부러 놀란 체하며 크게 떠들었다. 속으로는 더 업신여겼다.
자기가 씌운 누명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김우연이 정말 그랬단 말인가?
하지만 다른 이들의 얼굴은 한결같이 어두웠고 싸늘했다. 도둑질 문제는 집안에서 조용히 처리하면 그만이었다. 바깥에 새어 나가면 집안 수치일 뿐이다.
“이 망할 놈, 배운 게 하나도 없어! 우리 김씨 가문 체면을 다 깎아 먹었어!”
김병훈은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주먹을 꽉 쥐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손찌검을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우연이 나왔다.
그는 여전히 맨몸이었다. 보석도, 돈도 들고나오지 않았다.
다만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고, 그 위에는 반듯한 정자체의 작은 글씨가 가지런히 적혀 있었다.
“다시 한번 밝힙니다. 저는 김씨 가문의 재산이나 가치 있는 물건은 어떠한 것도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김씨 가문에 들어온 뒤로 쓴 돈은 전부 예전에 제가 모아 둔 제 돈입니다. 당신들은 저한테 한 푼도 준 적이 없고, 하루 세 끼와 잠자리만 제공했습니다. 이건 제가 쓴 문서입니다. 여기에 서명만 하면, 지금부터 저는 김씨 가문과 어떤 관계도 맺지 않겠습니다.”
김우연은 담담히 말하며 종이를 내밀었다.
맨 윗줄을 본 순간 김병훈의 두 눈이 확 커졌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보고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관계 단절 각서?”
심지어 김우연이 집안 돈을 한 푼도 가져가지 않고 떠나며, 문서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말까지 쓰여 있었다.
지금 당장 경찰을 불러 분실 물품을 확인하자고도 적혀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면, 그는 이곳을 떠나, 김씨 가문과는 영원히 연을 끊겠다고 했다.
“종이 한 장으로 네 몸에 흐르는 김씨 가문의 피를 부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김병훈의 분노는 점점 커져 금세라도 터질 듯 끓어올랐다.
다음 순간 당장이라도 손을 댈 기세였다.
“아버지, 서명하지 마요. 저는 우연 형이 떠나는 거 싫어요. 못 보내요! 형이 많은 잘못을 했다 해도 다 어려서 그런 거예요. 제발, 절대로 서명하지 마요. 누군가 나가야 한다면 제가 나갈게요. 지금 당장 나갈게요!”
김명헌은 눈을 부릅뜨고 매달리는 척했지만 실은 재촉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몸을 돌려 밖으로 향했다.
그가 한바탕 요란을 피우자 조서아 등도 죄다 김명헌을 붙잡으러 달려갔다. 현장은 한층 더 소란스러워졌다.
“너! 너! 너!”
김병훈은 말도 잇지 못하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도 뜻밖이었다. 김우연이 이토록 칼같이 나올 줄이야.
게다가 각서까지 들이밀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좋아. 두고 보자. 김씨 가문을 떠난 네가 무엇이 될 수 있는지! 언젠가 네가 펑펑 울면서 다시 받아 달라고 빌 그날을 나는 기다려 주지!”
김병훈은 속이 뒤숭숭했지만 더 머뭇거리지 않았다. 그리고 펜을 휘두르듯 단숨에 자기 이름을 써 내려갔다.
슥슥슥.
그다음 김우연의 이마에서 피를 손으로 쓸어 손도장을 찍었다.
“갈게요.”
김우연은 무표정하게 말하고 낡은 캐리어와 배낭을 들고 떠났다.
그의 발걸음은 점점 더 가벼워지고, 점점 더 날렵해졌다. 마치 이 순간을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 온 사람처럼 말이다.
대문을 여는 순간, 눈앞에는 여전히 어둠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하늘의 밝은 달이 희미한 빛을 뿜어 그의 앞길을 비춰 주었다.
저택 안.
김병훈을 비롯한 모두가 김우연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거실은 까마득히 고요했다. 김우연의 뒷모습이 어둠 속으로 스며들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제야 보이지 않았다.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너무 아파요. 우연 형이 이렇게 가 버리다니, 저는 이제 한 명의 가족을 잃었어요. 다 제 탓이에요. 모든 게 저 때문이에요! 제가 우연 형이 집을 떠나게 만든 거예요.”
김명헌은 목이 메어 몹시도 슬픈 표정으로 눈물을 훔쳤다.
아직 연기는 끝나지 않았다. 마무리를 위해 계속해야 했다.
“김우연은 가족이 아니야. 그저 외부인일 뿐이야. 자책하지 마.”
김슬기가 한숨을 쉬며 아주 다정히 김명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차피 곧 돌아올 거야.”
김지유는 얼음처럼 차갑게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돌아온다고?”
김명헌은 잠깐 멈칫하며 다급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래, 지유 말이 맞다! 반드시 돌아올 거야. 김씨 가문의 뒷받침 없이 걔는 아무것도 아니야! 사회에 나가 보면 금방 깨닫게 돼!”
김병훈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에 여전히 분노가 남아 있었다.
“아들, 걱정하지 마. 우연이는 반드시 돌아와.”
조서아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김명헌을 끌어안고 식탁으로 돌아갔다.
김씨 가문에는 다시 웃음소리가 가득 찼다. 그 웃음은 더없이 거리낌이 없었다.
마치 외부인이 하나 줄어들어서 한결 속이 시원하다는 듯.
그 시각.
김우연은 달빛을 따라 쓸쓸한 도로를 한 걸음씩 걸었다.
불 밝은 창마다 한 집 한 집이 모여 앉아 저녁을 즐기고 있었다.
그의 뒷모습은 조금 외로워 보였지만 눈빛은 벅차오르는 설렘으로 반짝였다.
“내 가족은 김씨 가문에 있지 않아! 내 집은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
김우연의 머릿속에는 한 길이 있었다. 수백만 번을 걸어 본 길이었다.
마침내 낡은 5층 연립주택 단지에 닿았다. 아까의 저택 가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그는 한 동 앞에 서서 호수를 확인하고 한 발 한 발 올라갔다.
5층을 오래도록 오르는데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한 집의 문 앞에서 멈춰 섰다.
그가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문이 열렸다.
세월의 자취가 선명한 노부부 한 쌍이 서 있었다. 그리고 놀라움으로 크게 눈을 뜨고 김우연을 바라봤다.
“아버지, 어머니, 저 돌아왔어요.”
김우연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목소리는 떨렸지만 벅차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