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52화
유정은 입술을 꼭 다물었다.
“왜 파혼하지 않겠다는 거야? 잘 시작했으면 깔끔하게 끝내는 게 맞잖아. 여기까지 왔는데 서로 더 상처를 줄 필요가 있나?”
조백림은 한 번 삼킨 뒤 낮게 반문했다.
“그게 나한테 공평해?”
백림은 고개를 돌려 유정을 바라보았다. 눈은 벌겋게 충혈됐고, 그 속에서 작게 불꽃이 일렁였다.
“나한테 마음 한 점도 없었다면 그날 성당에서 청혼은 왜 받아들였어?”
“파리에서 내 손잡고 걸을 때, 내가 늦게 돌아온 날 네가 보고 싶었다고 말할 때, 그 순간 넌 무슨 생각을 했는데?”
“우린 애초에 연인 행세를 하자고 계약했지. 하지만 계약서 어디에도 날 사랑하는 척하라는 조항은 없었어.”
유정은 그 요염하게 붉어진 눈빛을 마주 보다가 잠시 얼어붙었다.
백림은 허스키한 목소리로 힘주어 말했다.
“난 네가 날 사랑한다고 믿었어. 그래서 나도 진심을 내줬다고.”
“나도 진심이었어!”
유정은 마주 보며 말했고, 어느새 눈가가 뜨거워졌다. 이내 그녀는 시선을 돌리고 낮게 속삭였다.
“그래서 더 무서워.”
그 말을 끝내자마자 문을 열고 내려섰다. 백림은 창밖으로 점점 멀어지는 유정의 어깨를 바라보다 눈을 질끈 감았다.
유정은 정원으로 성큼성큼 걸었다. 가슴은 쓰리고, 작은 절망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차라리 백림이 여전히 가벼운 사람이라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속이며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백림이 방금 본인도 진심이었다고 한 사실이 웃기고도 슬펐다.
유정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눈물을 삼켰다. 잠시 뒤 다가온 도우미가 보이자, 깊게 숨을 들이쉬고 불이 환하게 켜진 본채로 향했다.
거실 문을 열자마자 묘한 긴장감이 전해졌는데, 신희 아버지 뻬고 모두 모여 있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중앙 소파에, 유신희는 창백한 얼굴로 할머니 품에 기대 있었고, 옆에는 조엄화가 굳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서은혜가 유정을 보자 곧장 다가왔다.
“밖에 춥지 않니?”
“괜찮아요.”
서은혜는 슬쩍 눈짓했다.
“무슨 말을 들어도 흥분하지 마.”
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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