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41장

지형을 잘 알고 있는 서정희였지만 급하게 나오느라 장비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신호가 없는 산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바위가 미끄러워 여러 번 미끄러 떨어졌지만 다행히 경험이 풍부하여 떨어질 때 길가에 있는 나뭇가지를 잡았다. 격렬하게 잡아당긴 탓에 피범벅이 된 두 손은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오늘은 정말 운이 안 좋았다. 설상가상과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작은 나무에 기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손바닥을 펴 피범벅이 된 손을 보았다. 너무 아팠지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지금은 벼랑 아래로 내려가 염정훈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시간이 지체되고 숲이 복잡해질수록 염정훈과 점점 더 멀리 떨어질 것이다. 연락도 되지 않는 곳에서는 단검과 총 한 자루 외에는 아무것도 보급되지 않았다. 인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염정훈을 꽤 많이 걱정하고 있었다. 사람은 늘 겉과 속이 다르게 행동한다. 입으로는 싫다고 말하면서도 사실 마음속으로는 혹시라도 그에게 일이 생길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장비마저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떠났으니 말이다. 이것은 이미 큰 금기를 어긴 것이다. 서정희는 이를 악물고 길을 재촉했다. 가는 중간중간 약간의 이슈가 있었지만 다행히 마지막 길에 긴 덩굴이 있어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폭우 속에 숲속은 유난히 음산하고 무섭게 느껴졌다. 맑은 날에도 머리 위의 나무들이 햇빛을 가렸었다. 그런데 흐린 날씨가 되니 더없이 스산하게 느껴졌다. 낮에는 나무 그늘로 동서남북을 구분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런 곳에서는 하루빨리 피할 수 있는 피난처를 찾아야 했다. 비가 오면 산골짜기 온도가 낮아지기에 깨끗한 옷이 없으면 체온이 쉽게 내려갈 수 있다. 게다가 뱀, 벌레, 쥐, 개미에 물리면 그 자리에서 바로 죽음이다. 하지만 염정훈만 생각하면 서정희는 쉴 틈이 없었다. 염정훈은 두 시간 이상 먼저 떠났다. 그때는 아직 비가 오지 않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