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4장

할아버지가 나타나자 백지연은 나무 뒤에 숨은 채 숨을 죽이고 무성한 나뭇잎으로 온몸을 가렸다. 앞에 있는 여자의 몸매는 아주 요염했지만 온몸에서는 위험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마치 원시림에 핀 꽃처럼 아름답지만 함부로 만질 수 없을 정도로 독이 강한 것 같았다. “오랜만이에요, 어르신.” 여자는 일부러 변조한 듯 일부러 원래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하게 했다. 백 어르신은 그녀를 조금 꺼리는 얼굴이었다. 아무리 옷을 입고 있다고 해도 딱 붙는 드레스는 그녀의 몸매를 그대로 드러냈고 주위 사람이 쉽게 다가설 수 없게 했다. “이번에 당신들 때문에 내가 얼마나 큰 피해를 봤는지 알아?” 백 어르신은 지팡이로 바닥을 힘껏 내리쳤고 얼굴은 더없이 차가웠다. “이번에는 확실히 제 밑에 있는 부하가 실수로 꼬리를 밟혔어요. 어르신이 저희를 숨겨 주신 것에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제가 직접 약을 갖고 왔습니다.” 약이라는 말에 백 어르신의 안색도 그나마 한결 좋아졌다. 그녀는 약을 쥔 손바닥을 백 어르신 앞에 펼쳐 보였고 그러자 백 어르신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의 손에서 약병을 가져갔다. 이렇게 조급해하면서도 기뻐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백지연은 오늘 처음 보았다. 백 어르신이 약병 안에 든 수량을 확인하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왜 30개뿐이야?” “그날 밤, 너무 급하게 그곳을 나오느라 만들어 놓았던 약들을 거의 다 두고 나왔어요. 어르신께서 굳이 탓하시려면 염정훈을 탓하세요. 그 자식이 어르신 계획을 망친 거예요.” 그 이름을 들은 백지연은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떻게 이 일이 염정훈과도 관련이 있을까? 이 여자는 도대체 어디서 온 사람일까? “내 앞에서 염정훈을 함부로 헐뜯지 마.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너의 행적을 감춰주는 게 내가 너희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야.” 어르신은 약을 주머니에 넣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너희들이 감히 우리나라에서 일을 저지르면 내가 제일 먼저 너희들의 아지트부터 쳐들어갈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