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4장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서정희를 보고 서제평은 손에 들고 있던 칼을 내려놓았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으면 아빠한테 얘기해. 참지 말고.” “아빠, 여긴 우리가 잠시 묵을 곳인데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면 어디서 살지?” 사실 염정훈과 더는 엮이고 싶지 않다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때 가서 아이를 데리고 어디로 도망갈 수 있을까? 서제평이 한숨을 쉬었다. “정훈이가 서씨 본가 매수했다고 들었어. 아니면 그 집으로 돌아가서 살자.” “좀 더 생각해볼게. 아직은 일러. 안 급해.” 서정희가 칼을 집어들었다. “아빠, 나도 가르쳐줘. 나도 아이한테 추억 남겨주고 싶어.” “그래. 가르쳐 줄게.” 차안심이 멀리서 이 화목한 모습을 찍어 염정훈한테 보냈다. 웨딩숍에서 드레스를 고르고 있던 염정훈은 넋을 잃고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 안의 서정희는 왼손에 칼을 들고 테이블 위에 나무를 고정시키고 있었다. 한 손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서정희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염정훈은 서정희의 속눈썹이 보일 정도로 사진을 최대한 크게 확대했다. 예전에 서정희가 막 임신했을 때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참새처럼 재잘거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 아기 아들일까? 딸일까? 아이 방 어떻게 꾸밀까? 공주 원피스를 사야 할까 아니면 멋있는 옷을 사야할까? 아이참, 장난감까지 다 골라야 돼.” 서정희는 번거롭다고 하면서도 귀찮아하지 않고 하나하나 골랐다. 비록 그때 자신이 그녀에게 냉정하게 대했어도 그녀의 흥분된 마음은 조금도 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서정희도 점차 냉정함을 눈치채고 더 이상 자신과 의논하지 않았다. 서정희가 혼자서 가구 매장과 신생아 용품점에 가서 직접 모든 것을 골랐다는 것을 사실 염정훈은 다 알고 있었다. 서정희는 작은 제비처럼 자신이 고른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하며 신중하게 골랐다. 서정희는 미래를 동경하고 아이가 태어나기를 고대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이 그녀를 그렇게 대했으니 지금 그녀는 뱃속의 아이한테는 사랑과 두려움 다 느끼고 있겠지. 나비가 되기를 갈망하면서도 위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