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과장이 하지안에게 업무 구역을 지정했다.
회사 로비와 사무실, 그리고 화장실까지 하지안이 청소해야 할 구역이었다.
차건우가 왜 마음을 바꿔 이런 자리를 준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하지안에게는 오히려 다행이었다.
설령 청소부일지라도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녀와 함께 일하는 사람은 쉰여덟 살의 임미진이었는데 손이 빠르고 꼼꼼한 베테랑이었다.
“요즘 젊은 여자애들은 말이야 전부 체면이랑 겉멋만 따지지. 돈이 없어도 청소 같은 일은 안 하려고 해. 더럽고 창피하다면서.”
“직업에 귀천이 어디 있어요. 내 손으로 돈 버는 일은 다 정당한 거죠. 합법적인 일이라면 뭐든 하면 되죠.”
하지안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청소하는 일이 부끄럽지는 않아요. 주머니가 텅 비는 게 더 부끄러운 거죠.”
임미진이 고개를 깊이 끄덕였다.
“맞아. 요즘 이렇게 철든 젊은이는 드문데...”
하지안은 조용히 웃으며 답했다.
“많을 거예요. 아주머니가 못 만나본 것뿐이죠.”
그 겸손한 태도에 임미진은 하지안을 더욱 마음에 들어 했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며 화장실을 정리했다.
그때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울리고 하민아가 들어오더니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언니, 회사 들어왔다길래 급히 찾아왔더니... 화장실 청소까지 하고 있네?”
같이 자라온 사이였기에 하지안은 하민아의 속내를 너무도 잘 알았다.
시비 걸러 온 게 분명했다.
하지안은 싸늘하게 그녀를 노려봤다.
“네 알 바 아니잖아.”
“어머, 발끈하는 것 좀 봐? 그런데 네 얼굴이랑 이 구질구질한 청소복이 정말 잘 어울린다.”
하민아는 더 기고만장하게 웃어댔다.
하지안은 마치 듣지 못한 듯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발 좀 치워줄래? 바닥 닦고 있어서.”
하민아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그녀는 일부러 꼼짝도 하지 않고 도발적인 눈빛을 보냈다.
하지안은 가차 없이 걸레 자루를 들어 그녀의 발 사이로 밀어 넣으며 그대로 바닥을 문질렀다.
“꺄악!”
하민아가 비명을 지르며 날카롭게 외쳤다.
“제길... 이거 새로 산 한정판 구두야! 당장 무릎 꿇고 닦아!”
하지안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비키라고 했잖아. 안 들렸어? 네가 안 움직였으니 네 탓이지, 왜 내 탓을 해?”
“헛소리 좀 하지 마. 언제 말했는데? 내가 못 들었을 리 없잖아!”
“귀가 안 좋으면 이참에 병원 가서 검진이나 받아.”
“너...”
하민아는 분노로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내 말 한마디면 널 회사에서 잘라버릴 수도 있어!”
“네가 뭔데 날 해고해?”
하지안이 태연하게 반문했다.
“난 건우 씨 여자 친구야!”
하민아가 뻔뻔하게 외치자 하지안이 하민아의 귀에 바짝 다가가 속삭였다.
“나는 차건우의 법적 아내인데?”
그 말이 하민아의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곧 아니게 될 거야!”
“적어도 지금은 맞잖아. 넌 뭐야? 겨우 숨겨진 애인일 뿐이지. 너희 집안은 대대로 첩 노릇하는 게 관행이야?”
“하지안, 이 천한 년!”
하민아가 욕설을 퍼부으며 쓰레기통을 발로 걷어찼다.
순식간에 바닥은 쓰레기와 휴지로 엉망진창이 됐다.
하지안의 표정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주워.”
자기한테 뭐라 하는 건 상관없지만 임미진의 땀이 담긴 노동을 짓밟는 건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하지안이 화를 내자 하민아는 오히려 더 기뻐하며 웃더니 이번엔 옆의 쓰레기통까지 전부 엎어버렸다.
하지안의 가슴이 분노로 요동쳤다.
“한 번만 더 말하는데, 당장 주워.”
하민아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 내가 왜? 안 주우면 어쩔 건데?”
옆에 있던 임미진조차 참지 못하고 나섰다.
“아가씨, 이게 무슨 짓이에요? 우리가 한참 동안 청소한 걸 엉망으로 만들다니 너무 무례하잖아요!”
“당신이 뭔데 훈계질이야?”
하민아가 웃으며 조롱했다.
“더러워졌으면 또 치우면 되지. 어차피 그게 당신들 일 아닌가? 괜히 게으름 피우지 마.”
말을 마친 하민아가 태연하게 나가려 했지만 임미진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
“일부러 더럽혔으니 치우고 가요.”
하민아가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임미진의 팔을 뿌리치려 했다.
“이 더러운 손 떼! 징그러워!”
임미진이 손을 떼지 않자 하민아는 임미진을 그대로 밀쳐버렸다.
임미진이 바닥에 세게 쓰러지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하지안이 급히 달려가 부축하며 외쳤다.
“하민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거야!”
하민아는 콧방귀를 뀌고 하이힐 소리를 내며 자리를 떴다.
엉망이 된 현장을 바라보며 임미진은 허리를 부여잡고 무력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휴...”
하지안은 이를 악물었다.
“아주머니, 앉아서 쉬고 계세요. 혼자 치우면 돼요. 하지만 저 여자가 한 짓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예요.”
정리까지 마친 뒤 그녀는 고민석을 찾아갔다.
“고 비서님, 혹시 화장실 복도 쪽 CCTV 영상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고민석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사모님, 갑자기 CCTV는 왜요? 혹시 잃어버리신 물건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하지안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다른 용도가 있어요.”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담당 부서에 연락해서 바로 가져오겠습니다.”
“최대한 화질이 좋은 걸로 부탁드려요. 대화 내용까지 들을 수 있으면 더 좋고요.”
“ 걱정하지 마세요. 회사 CCTV는 파리 날아가는 것도 잡아낼 정도로 선명합니다.”
하지안은 피식 웃었다.
“고마워요. 내일 커피 사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사모님.”
“앞으로는 사모님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괜히 문제 생길 수 있어요.”
하지안은 진지하게 말했다.
“차 대표님은 저를 극도로 싫어하시고 제 신분이 드러나는 것도 원치 않으세요.”
고민석은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사모... 아, 지안 씨.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솔직히 사모님이라고 불릴 자격이 충분하신 분 같은데...’
하지안은 받은 영상을 곧장 고민석이 초대해 준 사내 단체 채팅방에 올렸다.
영상은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회사 거의 모든 직원이 보게 되었다.
물론 하민아도 포함해서 말이다.
“세상에... 겉모습은 멀쩡해 보이더니 저렇게 무개념일 줄이야!”
“푸하하, 저 표정 좀 봐. 완전히 진상 아줌마 같네. 저런 사람이 감히 차 대표님 여자 친구라니?”
“와, 이거 진짜 대박 사건이다. 누가 이렇게 용감하게 올렸대? 내일 바로 짐 싸야 하는 거 아니야?”
채팅창은 조롱과 비웃음으로 들끓었고 하민아의 얼굴은 점점 굳어졌다.
고개를 들자 사무실 사람들 대부분이 그녀를 힐끔거리며 쑥덕거리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비웃음을 숨기지 못했고 어떤 이들은 대놓고 비아냥거렸다.
하민아는 더는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어 벌떡 일어나 사무실을 뛰쳐나왔다.
그녀는 사람 없는 구석에 이르러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건우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