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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하지안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휴게실로 향했다. 화장실에서 하민아가 임미진을 심하게 밀쳤던 일이 마음에 걸렸다. 이 모든 일은 결국 자신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지안은 임미진을 병원에 모시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막 휴게실 문 앞에 다다랐을 때 안에서 나오는 과장과 마주쳤다. “어딜 갔다 오는 거야?” 과장이 매섭게 노려봤다. 하지안이 입을 열려는 순간 안쪽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과장님, 안쪽에서 누가 우는 것 같아요. 아주머니 목소리 같은데... 무슨 일 생긴 건 아니죠?” 과장이 싸늘한 말투로 말했다. “일단 사무실로 따라와.” 하지안은 어쩔 수 없이 뒤따랐다. ... 사무실 문이 열리자 하지안의 시선은 소파 위에 나란히 앉아 있는 두 사람에게 꽂혔다. 하민아와 차건우였다. 하지안의 몸이 순간 굳어졌다. 하민아는 그녀를 가리키며 억울한 듯 눈물을 글썽였다. “건우 씨, 저 여자가 절 모함했어요. 일부러 CCTV 영상을 회사 단톡방에 퍼뜨려서 제가 회사에서 얼굴을 들 수가 없게 됐어요. 제발 저 여자 혼 좀 내주세요.” “어떻게 혼내주면 좋겠는데?” 차건우가 무심한 목소리로 묻자 하민아가 입술을 깨물며 조심스럽게 떠봤다. “제가 원하는 대로 해도 괜찮나요?” 차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 그의 대답에 하지안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민아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요, 건우 씨.” 이윽고 그녀는 고개를 돌려 하지안을 노려보았다. “언니니까 봐주는 거야. 널 너무 곤란하게 만들 생각은 없어. 반성문을 쓰고 전 직원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해.” ‘하지안 때문에 수모를 당했으니 반드시 갚아줘야겠어.’ 하민아는 하지안의 무릎을 꿇려 사람들 앞에서 얼굴을 못 들게 만들고 싶었다. 하지안은 숨을 들이쉬며 단호하게 말했다. “어림도 없어. 꿈도 꾸지 마.” 하민아는 억울한 척 울먹이며 차건우에게 매달렸다. “봐요, 건우 씨. 언니가 사과는커녕 저한테 화만 내요.” 차건우의 시선이 하지안에게로 향했다. “방금 들었지?” 하지안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맞섰다. “전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사과해야 하죠? 쓰레기통을 걷어찬 것도 먼저 시비를 건 것도 전부 하민아예요. 영상이 증거입니다. 대표님 눈에는 안 보이나요?” 하지안의 표정은 담담했지만 눈빛엔 억울함과 냉소가 서려 있었다. 불공평한 편애는 누군가에겐 방패가 되지만 누군가에겐 칼이 된다. 그리고 하지안은 언제나 아무리 억울해도 홀로 모든 걸 감당해야 했다. ‘하민아는 왜 이렇게 좋은 운명을 타고난 거지?’ 차건우는 눈을 가늘게 좁히더니 비웃었다. “청소부 주제에 감히 영상을 회사 단톡방에 퍼뜨려? 회사 기강을 흐트러뜨리고 질서를 어지럽히는 걸 누가 허락했는데?” 하지안은 말문이 막혔다. 잠시 후, 그녀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회사의 규정에 따라 징계를 받겠습니다. 하지만 하민아에게는 절대 사과하지 못합니다. 자기 여자를 두둔하는 건 이해하지만 최소한의 도리는 따져야 하는 거 아닌가요?” 차건우가 비웃으며 말했다. “도리? 자기 동생 혼사를 빼앗고 온갖 수를 써서 올라온 여자가 무슨 낯으로 도리를 입에 담지? 어울린다고 생각하나?” “저는 그런 적 없습니다.” 차건우는 아예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내일 아침 여덟 시. 반성문 들고 회의실로 와.” “저는 절대로 사과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안은 분노로 목소리가 떨렸다. “아무리 어째도 저는 법적으로 건우 씨 아내예요. 저런 여자를 위해 조강지처를 모욕하는 게 옳은 일인가요?” 차건우의 대답은 조롱뿐이었다. “하민아야말로 내가 아내로 맞을 여자이고 차씨 가문의 진정한 안주인이지. 네가 뭔데 민아와 비교해?” 하민아는 그의 어깨에 기대며 하지안에게 도발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칼날처럼 하지안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차건우가 저런 여자를 좋아할 줄은 정말 몰랐네.’ 그 순간 하지안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만둘게요. 지금 이 순간부터 저는 차현 그룹 직원이 아닙니다. 더 이상 저한테 명령할 권리, 없습니다.” “사직은 좋아. 다만 사과부터 하고 가.” 냉랭한 차건우의 목소리에도 하지안은 단호히 답했다. “죽어도 싫어요. 무릎 꿇고 사과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그는 서늘한 눈으로 위협했다. “좋아. 그럼 어디 한번 해 보지. 오늘 네가 이 회사 문을 나갈 수 있을지.” 하지안의 온몸이 분노와 억울함으로 떨렸다. 한편 하민아는 입이 귀에 걸릴 듯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 통쾌하네.’ 숨 막히는 정적이 감돌던 그때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고민석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뛰어 들어왔다. “대표님, 옥상에서 사람이 투신하려고 합니다.” 차건우가 눈썹을 찌푸렸다. “임미진이라는 청소부인데 오늘 해고 통보를 받곤 충격을 받은 모양입니다.” 하지안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끝까지 듣지도 않고 곧장 달려 나갔다. 차건우도 눈빛을 좁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민석이 재빨리 뒤따랐고 하민아도 구경거리를 놓칠 수 없다는 듯 따라붙었다. 5분 뒤 엘리베이터가 옥상에 멈춰 섰다. 기자들과 직원들이 이미 몰려와 있었다. 하지안은 온 힘을 다해 인파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곳엔 빗물에 흠뻑 젖은 임미진이 옥상 가장자리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다. 말라도 너무 마른 몸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아주머니, 거긴 너무 위험해요. 얼른 내려오세요.” 임미진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지안아, 여기까지 왔는데 무섭지 않아. 날 막지 마.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 하지안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며 부드럽게 말했다. “아주머니, 저 고소공포증 있어요. 제발 내려와 주시면 안 될까요?” 임미진이 울부짖었다. “나는 이 회사에서 5년 동안 묵묵히 일했어. 단 한 번도 잘못한 적 없는데 왜 잘리냐고! 왜!” 그 말에 하지안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말 안 해도 누구 짓인지 알 수 있었다. 하민아의 보복성 해고였다. 차건우가 뒤에서 받쳐주고 있으니 하민아는 그야말로 막무가내였다. 억울한 희생자는 결국 또 임미진이었다. 하지안은 두려움을 삼키며 천천히 옥상 가장자리로 기어 올라갔다. “일자리는 잃어도 다시 찾으면 되지만 목숨은 단 하나예요. 목숨만은 버리지 마세요.” 임미진은 흐느끼며 절규했다. “아들마저 죽고 남편은 암 환자야. 다섯 살짜리 손자가 하나 있는데 그 아이까지 내가 먹여 살려야 해. 이제 일자리까지 없으면 내가 무슨 수로 살아? 살고 싶어도 살 수가 없어. 이제 지쳐서 그만하고 싶어.” 그녀가 이렇게 고단한 삶을 살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하지안이 큰 충격에 말을 잃었다. 해고 통보는 결국 그녀를 절망 끝으로 몰아넣었다. 세상은 언제나 가난한 사람에게 가장 가혹했다. “살아 있는 건 원래 고된 거예요. 편안함은 죽은 자에게나 주어지는 거죠.” 하지안이 임미진을 마주 보며 단호히 말했다. “지금 뛰어내리면 남는 건 병든 남편, 다섯 살짜리 손자 그리고 해결 못 한 삶의 짐뿐이에요. 죽음이 두렵지 않으면서 가난은 두렵습니까? 가장 밑바닥은 구걸뿐이에요.” 그 순간 차건우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는 하지안을 깊게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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