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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막 결혼식 차량에 오르려는 순간, 검은 양복을 입은 건장한 경호원 몇 명이 길을 막아섰다. “혹시 하지안 씨 맞습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에 하지안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무슨 일이시죠?” 그중 선두에 선 남자가 다시 물었다. “어머님 성함이 고유정 씨 맞나요?” 하지안은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하지안 씨는 차씨 가문 차량에 탑승해 주세요. 지금 바로 차씨 가문으로 모시겠습니다.” 하지안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두 명의 경호원이 단호하게 그녀를 부축해 차씨 가문의 차로 향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이 여자는 내 신부야!” 허민수가 헐레벌떡 쫓아와 하지안을 붙잡으려 했지만 경호원에게 그대로 밀쳐져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한편, 하민아는 경호원들이 하지안을 차씨 가문의 차에 태우는 장면을 보고 깜짝 놀라 웨딩드레스를 치켜들고 달려왔다. “잘못됐어요. 저예요. 제가 차씨 가문의 신부라고요!” 하민아가 필사적으로 창문을 두드리며 외쳤지만 경호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귀먹었어요? 차씨 가문의 신부는 저라고요! 얘는 허민수의 신부라니까요?” 차는 그대로 출발했고 하민아는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화장이 번지며 눈물 자국이 얼굴을 타고 흘렀다. 마당에서 친척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하지석과 서혜민이 황급히 달려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차씨 가문에서 왜 지안이를 데려간 거야?” 이미 다들 하민아가 차씨 가문으로 시집간다고 알고 있었는데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마당에 내팽개쳐진 그녀는 웃음거리로 전락해 버렸다. 하민아가 울먹이며 말했다. “저도 몰라요!” “멍하니 있지 말고 빨리 차건우한테 연락해 봐.” 하민아가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온 건 차가운 안내음뿐이었다. ... 한 시간 후, 차량은 차씨 가문의 저택 앞에 멈춰 섰다. 고풍스러운 정원과 물길, 궁궐 같은 웅장함이 눈앞에 펼쳐졌다. 응접실에 들어선 하지안을 백발의 노신사가 환한 미소로 맞았다. “네가 지안이구나. 이리 와. 이 할아버지가 얼굴 좀 보자. 편하게 할아버지라고 부르렴.” 하지안은 여전히 지금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실례지만 누구시죠?” “나는 네 외할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였다. 옛날 시골 여행길에 산사태를 만나 죽을 뻔했는데 네 외할아버지가 날 구해줬지.” 하지안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그게 저를 여기로 데려온 것과 무슨 관련이 있죠?” 차준혁이 웃으며 말했다. “그때 한 달 동안 네 외할아버지 집에서 요양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너와 내 손자를 결혼시키기로 했다. 네 외할아버지가 돌아간 후로 연락이 끊기긴 했지만 어제 네 어머니에게 연락이 와서 이렇게 널 찾게 된 거다. 오늘 널 데리고 온 것도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고 네 어머니의 뜻이기도 하다.” 하지안의 가슴이 크게 요동쳤다. 고유정이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사실이었다. ‘엄마가 내 결혼 상대를 알고 이런 방법을 썼나 보네.’ 하지안이 급히 고유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어르신은 뵈었니?” “응.” “걱정하지 마. 엄마가 살아 있는 한 아무도 널 못 건드려. 어르신은 한번 한 약속은 꼭 지키시는 분이야. 너한테도 잘 대해주실 거야.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구나.” 하지안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내 걱정도 하지 마. 어르신께서 병원비도 내주시고 적합한 신장도 찾아주신대.” 그 말에 하지안은 감격스러운 눈물을 흘렸다. “정말?” “엄마가 너한테 왜 거짓말을 하겠니. 피곤해서 좀 쉬어야겠다. 결혼식 끝나고 병원에서 보자.” 말을 마친 고유정이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도 하지안은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도우미가 들어와 말했다. “어르신, 도련님께서 오셨습니다.” 뒤이어 묵직한 발소리가 울렸다. “건우야, 이리 와.” 하지안이 고개를 돌리자 조각 같은 얼굴에 서늘한 눈빛을 하고 검은 슈트를 입은 남자가 보였다. 그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낯선 여자를 보며 눈을 가늘게 좁혔다. “이 여자는 누구예요?” 차준혁이 웃으며 답했다. “네 신부가 될 하지안이다.” 그 말에 차건우는 싸늘한 눈빛으로 하지안을 보며 말했다. “제가 결혼하려던 사람은 다른 사람입니다.” 차건우의 시선이 차갑게 꽂히자 하지안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어쩐지 익숙한 목소리같은데... 어디서 들어봤지?’ “이건 할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한 약속이야. 너도 알다시피 난 한번 한 약속은 꼭 지키는 사람이다. 그러니 차씨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이 결혼을 해야 한다. 네가 원래 결혼하기로 했던 그 여자는 돈을 쥐여주든 내가 알아서 처리하든 하마.” “그 여자는 제가 인정한 유일한 아내입니다. 오늘 그 여자가 아니면 결혼하지 않겠습니다.” 차건우가 하지안을 손으로 가리키며 싸늘하게 말을 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사라져야 할 사람은 이 여자죠.” 차건우의 말에 차준혁이 꾸짖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지안이 말고는 그 누구도 네 아내가 될 수 없어! 차씨 가문이 백 년간 지켜온 명예를 더럽힐 수는 없어!” “하...” 차건우가 싸늘하게 웃었다. “약속은 할아버지가 하신 거니 가문에 먹칠을 하는 것도 할아버지 때문이지 저랑 상관없는 일입니다.” “이 불효막심한 자식!” 차준혁의 얼굴이 분노로 붉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차건우는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곧장 자리를 떴다. 그 모습을 본 하지안이 급히 뒤따라 달려갔다. 조금 전의 상황만으로도 하지안은 차건우가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누구라도 처음 본 낯선 사람을 아내로 맞이하진 않을 터였다. 하지만 그녀는 반드시 차씨 가문을 이용해 하씨 가문과 허민수에게서 벗어나야 했다. 그래야만 고유정의 병을 치료할 수 있었고 그녀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었다. 반드시 할 말은 전해야 했다. 차건우의 다리는 길고 보폭이 넓어 그를 따라잡으려면 하지안은 달리다시피 해야 했다. 마침내 복도 모퉁이를 돌았을 때 하지안은 겨우 차건우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하지안은 차건우의 앞을 막아서며 숨을 몰아쉬었다. “잠깐만요, 할 말이 있어요.” 차건우는 뒤따라온 하지안을 내려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말해.” “건우 씨가 저랑 결혼하기 싫은 건 알겠어요. 하지만 저도 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니에요. 제삼자가 될 생각도 없고 다른 사람의 결혼을 망칠 생각도 없어요.” 차건우는 냉소를 지었다. “그럼 왜 아직 여기 서 있는 거지? 지금 당장 차씨 가문에서 나가.” “엄마가 위중해요. 이 결혼은 엄마의 유일한 소원이에요. 저는 엄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할아버지는 늘 약속을 지켜오셨죠. 당신도 차씨 가문의 명예가 당신 손에서 더럽혀지는 건 원치 않을 거잖아요. 그러니까 계약 결혼을 하는 걸로 해요. 1년 뒤에 이혼해요. 그러면 엄마도, 할아버지도 이해하실 거예요.” 차건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 시선에 머리가 저릿해 났지만 하지안은 애써 담담한 척하며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엄마는 내연녀 때문에 이혼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평생 그런 짓을 안 하겠다고 맹세했어요. 이번 일은 오직 엄마의 소원을 위해서예요. 믿어 주세요.” 차건우의 몸에서 감돌던 냉기가 조금 가셨다. “여덟 달, 그게 내 한계야.” 하지안이 망설임 없이 답했다. “좋아요.” 그때 도우미가 다가와 말했다. “도련님, 시간 다 됐습니다. 하객분들 모두 자리하셨고 결혼식이 곧 시작될 예정입니다. 어르신께서 얼른 모셔 오라십니다.” “난 계약 결혼만 하겠다고 했지 결혼식을 하겠다고는 안 했어. 볼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 차건우가 차갑게 말하고는 뒤돌아 나갔다. 이를 본 도우미가 당황했다. “도련님께서 가셨는데 신랑 없이 결혼식은 어떡하죠?” 하지안은 손가락을 꼭 움켜쥐며 담담하게 말했다. “신랑이 없어도 혼자 할 수 있어요. 하객들에게 웃음거리를 만들어줄 순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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