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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하지안은 하씨 가문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 없었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하지만 차준혁이 이미 말을 꺼낸 이상 가기 싫어도 가야 했다. 검은색 롤스로이스가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안은 왼쪽 차건우는 오른쪽에 앉아 있었고 두 사람 사이엔 한참의 거리가 있었다. 차가 멈추자 두 사람은 앞뒤로 걸어 하씨 가문 저택으로 들어섰다. 뒤따르는 운전기사의 손에는 미리 준비해 온 예물이 들려있었다. 문을 열자 하지석과 서혜민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두 사람을 맞이했다. “차 대표님, 그냥 와도 되는데 무슨 선물까지 준비했어요. 자기 집처럼 생각하고 언제든 편하게 와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민아가 2층 계단에서 쏜살같이 내려왔다. 그녀는 하지안을 밀쳐내고 친밀하게 차건우에게 팔짱을 꼈다. 차건우의 표정은 담담했지만 몸은 본능적으로 약간 거리를 두었다. 그럼에도 굳이 그녀를 뿌리치진 않았다. “민아야, 점심 준비 다 됐으니 얼른 차 대표님 안내해 드려라.” 웃는 얼굴로 아첨을 늘어놓는 하지석의 시선은 오로지 차건우에게만 향해 있었다. 그는 정작 옆에 서 있는 딸, 하지안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점심상이 준비되자 서혜민이 다정하게 권했다. “차 대표, 상석에 앉으세요.” 차건우가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 “서열대로 앉겠습니다. 저는 여기면 됩니다.” 하지석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상석에 앉았고 하민아는 웃음을 머금고 차건우 옆에 나란히 앉았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하민아와 차건우야 말로 신혼부부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하지안은 아무도 자신을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에 조용히 방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하민아가 잽싸게 눈치를 채고 불렀다. “언니, 어디가? 어서 와서 같이 먹어.” 모든 시선이 하지안에게로 쏠렸다. 서혜민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차건우가 앞에 있어 대놓고 날을 세울 수도 없었다. “어서 와서 같이 먹자.” 서혜민은 하지안을 억지로 앉히며 겉으로는 부드럽지만 손아귀로는 그녀의 팔을 세게 꼬집었다. 식탁을 둘러보니 산해진미가 가득했다. 차건우를 대접하기 위해 꽤 공을 들인 게 분명했다. 마침 배가 고팠던 하지안은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어 말없이 수저를 들었다. “민아야, 취직 준비는 어때?” 서혜민이 일부러 묻자 하민아가 한숨을 쉬며 답했다. “몇 군데 면접 보긴 했는데 아직 딱 맞는 곳은 없어요.” 그러다 하민아는 차건우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기대를 담아 물었다. “건우 씨, 회사에 신입 채용 안 하나요?” “내일 차현 그룹에 가서 입사 절차 밟아. 안내하는 사람이 있을 거야.” 차건우는 자기 여자에게 후한 편이었다. 비록 아내는 아니었지만 첫날 밤을 준 여자이다 보니 차건우는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그 말에 하지안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차현 그룹은 경성에서 제일 유명한 그룹으로 수많은 명문대 출신이 목숨 걸고 들어가려는 곳이었다. 하민아는 그저 한마디 가볍게 꺼냈을 뿐인데 손쉽게 차현 그룹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차건우는 하민아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하민아는 하지안을 향해 자랑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건우 씨. 열심히 할게요.” 하민아의 말에 하지안은 비웃음을 흘렸다. “하...” ‘삼류대 졸업장도 돈 주고 산 주제에... 열심히는 무슨...’ 차건우가 그녀를 날카롭게 바라보며 물었다. “왜 웃어?” 모든 시선이 다시 하지안에게로 향했다. 하지안은 고개를 들어 차건우의 시선을 마주하며 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오늘 음식이 별로라서요. 해산물은 비리고 소고기는 질기고... 딱 봐도 아주머니가 직접 한 음식은 아니에요. 반조리 식품이죠? 아주머니가 음식은 잘하거든요.” 서혜민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저 천한 년이...’ 하지만 차건우 앞이라 서혜민은 억지로 웃음을 짜낼 수밖에 없었다. “오늘 몸이 안 좋아서요. 다음에 오시면 꼭 직접 하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차건우의 싸늘한 한마디에 하지석의 얼굴이 굳고 서혜민은 숨도 크게 못 쉬었다. 하민아는 혹시라도 차건우의 심기를 어지럽히기라도 할까 봐 조심스레 눈치를 살폈다. 일행은 모두 식욕이 사라졌지만 오직 하지안만이 평소보다 한 그릇 더 비우며 잘 먹었다. 식사 후 하지안은 방으로 돌아가 옷장을 정리하며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이제는 호적도 차씨 가문으로 옮겨진 만큼 하씨 가문에 다시 오기 싫었던 그녀는 모든 짐을 차씨 가문으로 옮기기로 했다. 짐을 정리하고 있을 때 하민아가 들어왔다. 하민아는 하지안을 바라보며 복잡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저년이 아니었으면 난 벌써 차씨 가문 사모님이 됐을 텐데...’ “고작 이런 것도 챙길 가치가 있어?” 하지안은 고개도 들지 않고 답했다. “너랑은 상관없는 일이잖아.” “차씨 가문에 시집갔다고 기세등등해하지 마. 어차피 8개월 뒤면 쫓겨날 주제에.” 하민아는 이를 악물고 하지안을 노려봤다. 하지안은 담담한 얼굴로 비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뭐? 내가 차건우랑 이혼하지 않는 한 넌 공식적으로는 영원히 내연녀일 뿐이야. 너희 엄마처럼 뻔뻔하게 남의 가정 파괴한 여자지.” “이 천한 년이! 오늘 네 입을 찢어버릴 거야!” 하민아는 그대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하지안은 재빠르게 몸을 피했다. “차건우도 정말 보는 눈이 없다. 너 같은 걸 보고 반하다니...”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방문이 열리며 차건우가 들어섰다. 그는 넘어지려는 하민아를 부축하며 어두운 눈빛으로 하지안을 바라봤다. “보는 눈이 없어서 얘 같은 걸 보고 반했다고? 얘 같은 게 어떤 건데?” 그 말을 듣는 순간 하지안의 안색이 변하며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을 꽉 움켜쥐었다. 하민아는 재빨리 차건우의 품으로 파고들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차건우는 하지안을 냉랭하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하민아야말로 내가 인정한 차씨 가문의 사모님이야. 네가 어떻게 차씨 가문으로 들어왔는지는 네가 더 잘 알겠지. 다음에도 이런 일이 생기면... 알아서 해.” 하지안은 시선을 떨군 채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알았어요.” 그는 시선을 돌려 품에서 블랙카드를 꺼내 하민아에게 건넸다. 눈빛 속의 살기는 조금 거두어졌지만 여전히 서늘했다. “선물이야. 필요한 게 있으면 알아서 사.” “네, 고마워요.” 하민아는 거의 입이 찢어질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건우 씨, 먼저 응접실로 가 있어요. 금방 따라갈게요.” 차건우는 하지안에게 마지막으로 경고하듯 눈을 흘기고는 뒤돌아 나갔다. 그가 사라지자마자 하민아는 팔짱을 끼고 우쭐한 표정을 한 채 말했다. “봤어? 블랙카드야. 한도도 없어서 비행기든 빌딩이든 내가 원하는 건 뭐든 살 수 있어.” 하지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 무심한 태도가 오히려 하민아를 더 불쾌하게 만들었다. 하민아는 몸을 숙여 하지안의 귓가에 속삭였다. “아, 맞다. 중요한 걸 깜빡할 뻔했네. 네가 차씨 가문으로 시집가는 바람에 허민수와의 결혼이 엎어졌잖아. 아빠가 너희 엄마 병원비를 끊어버렸어. 너희 엄마는 아마 죽음의 문턱에서 허덕이고 있지 않을까?” “그럴 리가 없어!” ‘이틀 전에 엄마가 직접 연락해서 할아버지가 치료비를 이미 내줬다고 안심하라고 했는데... 차씨 가문에는 돈이 넘쳐나니 엄마가 나한테 거짓말할 이유도 없을 텐데...’ “오늘 아침에 병원에서 마지막 납부일 지났다고 전화 왔다던데? 너희 엄마 벌써 병원에서 쫓겨났대.” 하민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지안은 얼굴이 새하얘진 채 그대로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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