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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차건우는 말없이 앉아 있었지만 허민수는 그 침묵을 두려움이라 착각하고 얼굴에 비열한 미소를 띠었다. “이게 바로 네가 도망쳐서까지 결혼하려던 남자야? 나보다 젊고 잘생겼다는 거 빼고는 돈도 없고 능력도 없는 놈이잖아. 그냥 겁쟁이지.” 그의 경멸 어린 시선이 차건우에게 박혔다. 한재혁이 귀를 후비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어디서 개가 풀려나왔나? 시끄럽게도 짖어대네.” 그 말에 허민수의 눈이 확 돌아갔다. “뭐라고? 어디서 기어 나온 놈이 감히 나를 개한테 비교해? 오늘 나한테 엎드려 빌지 않으면 내가 성을 간다. 다들 와서 저 새끼 얼굴 박살 내.” 경호원 몇 명이 기세등등하게 차건우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한재혁의 발길질에 모조리 나가떨어졌다. “하... 한심한 것들.” 허민수가 욕을 내뱉으며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끊은 그는 이를 드러내며 으름장을 놨다. “오늘 너희 전부 여기서 나가지 못할 줄 알아!” “응. 우리도 나갈 생각 없어.” 한재혁은 태연하게 소파에 몸을 늘어뜨렸다. “네가 불러온 원군이나 기다려 보지 뭐.” “젊은 놈이 겁이 없네. 끝까지 잘 버텨봐라. 조금 있다가 네놈들이 비명 지르는 꼴을 내가 꼭 봐주마!” 그 말이 끝나자 문이 벌컥 열리며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허민수는 환하게 웃으며 한 남자에게 달려갔다. “형님, 드디어 오셨네요. 오늘 꼭 제 편 좀 들어주셔야 합니다. 저놈들이 절 개새끼라 욕했어요! 형님 손맛으로 호되게 혼 좀 내주십시오!” 전세혁이 턱을 치켜들며 느긋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감히 내 구역에서 네 체면을 구기게 놔둘 것 같아? 오늘 반드시 네 분풀이를 해줄게.” 허민수는 기다렸다는 듯 손가락으로 소파 귀퉁이에 앉아 있는 차건우를 가리켰다. “바로 저놈입니다, 형님!” “좋아, 어디 보자. 대체 어떤 개같은 놈이...” 그러나 전세혁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차건우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목이 뻣뻣하게 굳어버리고 안색이 하얗게 질린 전세혁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다리에 힘이 풀린 전세혁이 비틀거리며 두 사람에게 다가가 몸을 낮추며 비굴하게 고개를 조아렸다. “대... 대표님...” 허민수는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뒤에서 목청껏 외쳤다. “형님, 절대 가만히 놔둬서는 안 됩니다. 죽을 때까지 한번 패주죠. 저한테 개새끼라고 했는데 본때를 보여주자고요.” 그 순간 전세혁이 허민수에게 발길질했다. 허민수가 신음을 내며 물었다. “형님, 왜 저한테 그러십니까? 맞아야 할 놈들은 저놈들이란 말입니다!” “닥쳐!” 전세혁은 이를 갈며 허민수에게 쏘아붙였다. “이 멍청한 놈아! 네가 건드린 분이 누군 줄 알아? 차씨 가문 도련님이시다. 감히 그런 분을 욕하다니 정말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거야?” ‘차씨 가문 도련님? 차건우?’ 허민수는 순식간에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며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아까는 잘만 짖어대더니 이제 벙어리라도 된 거야?” 허민수가 무릎을 꿇은 채로 자신의 뺨을 내리쳤다. “대표님, 제가 눈이 멀었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도 억울합니다. 저 여자가 먼저 저를 꼬드긴 겁니다. 맹세코 전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절대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제발 믿어주십시오!” 하지안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허민수의 말은 그녀의 머리 위에 매달린 칼날 같았다. 하지안도 허민수보다 무서운 사람은 바로 눈앞의 차건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차건우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꺼져.” “네... 네, 대표님. 바로 꺼지겠습니다.” 허민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듯 뛰쳐나갔다. 차건우는 담배를 비벼 끄며 옆으로 내던졌고 눈치 빠른 전세혁이 잽싸게 손바닥을 내밀어 재떨이 대신 받았다. “네가 기른 개는 네 손으로 처리해.” 차건우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서늘했다.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알아듣게 잘 처리하겠습니다.” 하지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곧바로 머리 위로 서늘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차건우의 시선이 그녀에게 꽂혔다. “당장 꺼져. 더 이상 수치스럽게 여기 있지 말고.” 그 차가운 한마디에 하지안의 몸이 덜컥 떨렸다. 하지안은 차건우가 오해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해명하지 않고 서둘러 방에서 빠져나왔다. 도망치듯 빠져나왔지만 돈이 필요했던 그녀는 일자리를 잃을 수 없다는 생각에 결국 이를 악물고 다시 업무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차건우는 워낙 바쁜 사람이니 설마 알바까지 들킬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안은 거울을 보며 얼굴을 닦고 감정을 다잡고 다시 일에 집중했다. 다음 날 새벽 여섯 시, 기진맥진한 몸으로 차씨 가문 저택에 돌아온 하지안은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차준혁과 마주쳤다. “이렇게 일찍 어디 나갔다가 오는 거야?” 하지안은 눈빛을 피하며 재빨리 거짓말을 내뱉었다. “조깅하고 왔어요. 운동 삼아 두 바퀴 정도 돌았어요.” “좋은 습관이네. 젊은 사람은 그래야지.” 차준혁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안아, 지난번 네 어머니가 그러더구나. 6월에 대학 졸업했는데 아직 직장은 못 구했다고.” 하지안은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회사에 자리 하나가 비었어. 아침 다 먹고 진 집사 따라가 입사 절차 밟으렴.” 그 말을 들은 하지안은 믿기지 않는 듯 멍하니 서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오전 9시, 검은색 차량이 차현 그룹 본사 빌딩 앞에 도착했다. 거대한 유리 건물은 하늘을 찌를 듯 웅장했다. 진 집사의 안내로 건물에 들어선 하지안은 28층에서 내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마주 오는 남자를 향해 진 집사가 손짓했다. “고 비서님, 사모님 입사 관련해서 처리 좀 부탁해요.” “네. 사모님,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사모님이라는 호칭에 하지안은 민망한 듯 말했다. “저 그냥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입사 절차를 마친 뒤 고민석은 하지안에게 자리를 안내해 주고 업무를 설명해 준 뒤 회사 단톡방에도 초대했다. 책상 정리를 막 마친 그녀에게 내선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설탕 빼고 커피 두 잔. 휴게실로.” 상대는 쓸데없는 말 없이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하지안은 부리나케 커피 두 잔을 내려 휴게실로 향했다. 양손에 커피가 들려있던 탓에 하지안은 어깨로 문을 열려 했지만 갑자기 안쪽에서 문이 열렸다. 중심을 잃은 그녀는 누군가의 단단한 가슴팍에 부딪혔다. 순간적으로 밀려드는 아픔에 눈물이 맺힐 정도였다. 차가운 남자의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왜 여기 있어?” ‘이 익숙한 목소리...’ 하지안이 고개를 들자 차가운 눈매와 단단한 턱선을 가진 차건우가 보였다. 움찔하며 말을 꺼내려던 찰나 그가 먼저 차갑게 말을 던졌다. “참 바쁘게 사시네. 어젯밤엔 그런 데서 놀고 있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여기 아양 떨려고 왔어?” 차건우의 날카로운 말이 그녀의 해명을 단칼에 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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