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문가영이 여민지를 다시 본 건 병원에서였다.
그녀는 교수의 뒤를 따르며 새로 온 의사로 소개되고 있었다.
차트를 작성하다가 고개를 든 문가영은 진수빈 옆에 서 있는 여민지를 보았고, 두 사람은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똑같은 하얀 가운에 덤덤한 표정을 지은 두 사람은 무척 잘 어울려 보였다.
여민지는 문가영의 눈빛을 알아차린 듯 이쪽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뭔가를 알아내려 하지도, 아무런 감정을 담지도 않은 눈빛으로 문가영의 속내를 꿰뚫어 보듯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러고는 시선을 거두며 진수빈에게 무언가를 속삭이자 진수빈도 덩달아 시선을 들어 문가영을 바라보고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전북 최고의 병원 중 하나인 전북 병원은 연일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여민지의 환영식도 몇 마디 인사말로 지나친 뒤 모두 정상 근무를 시작했다.
의사들은 흩어졌고 문가영이 채혈하러 가려고 물건을 정리하는데 데스크를 두드리며 진수빈이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4번 환자 지난 일주일간의 모니터링 기록 전부 주세요.”
문가영이 차트를 내밀며 물었다.
“4번 환자 맡으시게요?”
진수빈이 차트를 뒤적이며 대꾸했다.
“그쪽은 지금 여기서 나한테 그런 질문을 할 게 아니라 다른 환자들 채혈하러 가야죠.”
“그냥 걱정돼서요.”
진수빈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병원에 걱정해야 할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말장난으로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 방금 지체한 1분이면 벌써 환자 세 명의 체온을 재고도 남겠네요.”
그의 말에는 언제나 배려가 없었다. 간호사 스테이션 앞에 둘러서 있던 꽤 많은 사람이 그의 말을 듣고 문가영을 향해 동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문가영이 멈칫하며 굳어지는데 곧바로 여민지의 차가운 말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의사와 간호사는 각자 맡은 직책이 있는데 서로 선 넘지 않는 건 기본 원칙 아닌가요.”
그렇게까지 말하니 문가영도 차마 더 해명할 수가 없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채혈하러 병동으로 갔다.
간호사 스테이션에서 나오며 진수빈과 여민지 옆을 지날 때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병원 간호사들 교육이 제대로 안 됐네요.”
진수빈이 짧게 대꾸하며 말했다.
“다 그런 건 아니에요. 나중에 교수님께 말씀드리죠.”
점심시간이 되자 귀가 조금 아팠던 문가영은 화장실로 숨어 들어가 보청기를 벗었다.
청력 문제가 점점 심해지는데 보청기를 너무 오래 착용한 탓에 귀 상태도 심각해지고 있었다. 지난번 검진에서 장 교수가 인공와우 이식을 권유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화장실 칸에 들어가 보청기를 빼자 세상이 조용해졌다.
그녀의 첫 보청기는 진수빈이 선물한 것이었다.
사고 후 반년 동안 문씨 가문에서는 여러 의사를 찾아다녔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어 결국 인내심이 바닥나 그녀를 방치하고 말았다.
문사라가 진수빈에게 알려줘서야 다음날 진수빈이 보청기를 전해준 것이었다.
바로 그날 문가영은 6개월 만에 다시 진수빈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잘 끼고 다녀. 빼지 말고.”
문가영은 10분 남짓 화장실에 머물며 귀의 불편함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밖으로 나왔다.
간호사 스테이션에서는 무언가를 논의하는 듯 분주하게 움직이다가 문가영이 돌아오자 모든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쏠렸다.
문가영은 당황했다.
“왜 그래요?”
누군가 말했다.
“문씨 가문에서 우리 과에 기기 다섯 대를 더 기증했대요. 그것도 해외에서 들여온 최고급으로.”
시선을 들어 올린 문가영은 저도 모르게 손을 꽉 말아쥐었다.
그녀가 처음 병원에 들어왔을 때도 문소운이 병원에 기기 두 대를 보냈는데 그게 문가영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되었다.
문소운은 문가영의 귀가 다치지만 않았어도 문씨 가문에서 그런 돈을 쓰진 않을 거라고 말했다.
오늘 이 다섯 대의 기기는 여민지를 위한 것이었다.
동료는 문가영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하고 부러운 듯 말했다.
“자기 딸이 병원에서 일하니까 도와주고 싶대요. 가영 씨 부모님은 참 좋은 분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