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그 말을 꺼낸 동료의 이름은 함영희, 평소 문가영과 꽤 친한 사이였다.
그녀는 부러운 듯 문가영을 바라보았다.
“가영 씨도 나름 성공한 삶을 살고 있네요. 사랑해 주는 부모님도 있고 좋아하는 일도 하는데 진 선생님처럼 잘생긴 약혼자도 있고.”
그녀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진 선생님이 좀 매정하긴 해도 잘생긴 건 사실이잖아요.”
여전히 넋을 잃고 있던 문가영은 함영희의 이 말을 듣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함영희와 다른 동료들의 부러운 시선에도 문가영의 속은 엉망진창이었다.
우스꽝스러운 도둑이 된 것 같았다.
자기 것이 아닌 물건을 훔쳐 가놓고 다른 사람이 칭찬하니 괜스레 마음에 찔리고 수치스러운 그런 느낌.
그녀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설명하려고 입을 여는 찰나, 갑작스럽게 환자가 찾아와 함영희는 곧바로 뒤돌아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도 이내 할 일을 하러 갔다. 원래도 간호사에겐 쉴 틈이 없는데 대학병원 간호사는 더욱 바빴다.
그래도 다행히 오후에는 문씨 가문이 기기를 기증했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교대를 마치고 문가영이 짐을 챙겨 돌아가려는데 함영희가 그녀를 불렀다.
“가영 씨, 잠깐만요. 같이 가요.”
문가영은 당황했다.
“어디 가요?”
“네? 오늘 모임 있잖아요.”
함영희가 머리를 ‘탁’ 쳤다.
“참, 아까 수 간호사님 말할 때 없었죠. 오늘 여 선생님 처음 오신 날이라 의사들끼리 가벼운 환영식 한다네요. 우리도 수습 간호사가 들어와서 이참에 같이 모이기로 했어요. 저녁에 당직인 사람도 있어서 번거롭지 않게 아래층 식당 예약했대요.”
문가영은 제자리에 멈춰선 채 망설였다.
하지만 그녀가 거절하기도 전에 함영희의 손에 이끌려 곧장 엘리베이터 앞으로 향했고 마침 진수빈 일행과 마주쳤다.
진수빈은 의사 몇 명과 함께 서 있었는데, 흰색 가운을 벗고 깔끔한 흰색 셔츠를 입은 채 윗단추까지 꼼꼼하게 채웠다.
잘 재단된 정장 바지는 그의 다리를 더욱 길어 보이게 했고, 넓은 어깨와 잘록한 허리 덕분에 어느 각도에서 봐도 훌륭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하필 표정도 차갑고 담담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어 전형적인 차도남 모습이었다.
방우지가 문가영과 함영희를 보고 밝게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넸다.
“문 간호사님, 함 간호사님, 이쪽으로 오세요.”
함영희는 문가영을 이끌고 당당하게 다가갔다.
“방 선생님, 무슨 얘기 하고 계세요? 웃는 소리가 저쪽에서부터 들렸어요.”
방우지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 정도예요?”
“그래서 무슨 얘기 하고 있었는데요? 가영 씨한테도 말해줘요.”
함영희는 쾌활한 성격으로 평소 동료 의사, 간호사들과 사이가 좋았다.
한 의사가 웃으며 답했다.
“오늘 우리 과에서 기기 대를 기증받았는데 모두 최신식이라 기분이 좋네요. 여 선생님이 병원 오신 첫날부터 이렇게 큰 선물을 들고 올 줄은 몰랐어요. 앞으로 여 선생님은 여신님이에요.”
“네?”
함영희는 어리둥절했다.
“문씨 가문에서 기기 증정한 것 아닌가요? 그게 여 선생님과 무슨 상관인데요?”
“여 선생님이 문씨 가문 사람이잖아요.”
함영희가 눈을 크게 뜨며 문가영의 팔짱을 낀 손에 힘을 주었다.
“가영 씨?”
당황한 문가영은 함영희의 의구심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그녀가 처음 병원에 왔을 때만 해도 문씨 가문에서 대외적으로 입양한 딸임을 공개하지도 않고 다정한 부모·자식인 척 요란법석을 떨었으니까.
문가영이 망설이는 사이 진수빈은 문가영을 바라보며 거침없이 입을 열었다.
“문씨 가문에서 여민지 씨 때문에 기기를 기증한 거지 문가영 씨와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