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6화
강현우는 손에 든 작은 상자들을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옆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서이현이 일어나 그중 하나를 열었다.
“이것들은 모두 학교 다닐 때 현우 씨가 날 달래주려고 했던 말들이에요. 그때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마음이 너무 안 좋았는데 앞으로 계속 내 옆에 있어 주겠다고 했었죠.”
그녀가 열 몇 살 때 부모님이 세상을 떠난 바람에 일찍이 서씨 가문의 본가로 보내져 그곳에서 자랐다. 워낙 영특한 아이라 우희주의 눈에 띄었던 것이다.
하여 예절이나 각종 규칙을 배울 때면 서이현은 무척이나 행복했다. 적어도 인생에 목표가 생긴 것이니까.
이 말들은 모두 강현우가 그녀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쓴 것들이었다. 항상 남들에게 따뜻했던 강현우가 가여운 그녀에게는 오죽했을까?
서이현은 숨을 깊게 들이쉬더니 더는 읽지 않았다.
“됐어요. 전에 유혜정 씨랑 스캔들이 났을 때 난 혼자 이렇게 생각했어요. 현우 씨가 워낙 착해서 내가 슬퍼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어서 이런 말을 써준 거라고요. 이젠 컸으니 현우 씨한테도 선택권이 있고 현우 씨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했어요. 사실 나 자신을 설득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현우 씨, 난 현우 씨의 병 따위 신경 쓰지 않아요. 양가에서도 우리를 응원해주고 있는데 왜 굳이 이진아 씨한테 매달리는 건데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강현우가 고개를 살짝 들었다.
“이현 씨가 해외 연구소에서 지위가 높고 건축을 매우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더 깊이 공부할 수 있도록 최고의 학교에 추천해줄 수 있어요.”
서이현의 표정이 차갑게 식어버리더니 손에 든 상자를 꽉 쥐었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내 병은 진아만이 고칠 수 있어요. 진아가 고치고 싶지 않다면 그냥 죽어버리려고요.”
서이현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마음 같아서는 손에 든 상자를 부숴버리고 싶었다.
두 눈에 섬뜩한 기운이 감돌더니 입꼬리를 파르르 떨며 말했다.
“이만 내려가요. 아직 손님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요.”
서이현은 절대 다른 여자들처럼 무식하게 화만 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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