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이서하가 병실 침대에서 막 몸을 일으키려던 무렵, 병원장이 안으로 들어섰다.
“이 선생님, 선생님의 부적절한 처신으로 인해 병원의 명성이 심각하게 훼손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해임조치를 결정했으니 앞으로 스스로 처신 잘하시기 바랍니다.”
원장은 말을 마치고 바로 돌아섰고 홀로 남은 이서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이서하는 병원에 사흘이나 더 입원해 있었지만 그동안 강태민은 단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퇴원해 집으로 돌아온 날, 문을 열려던 이서하는 집안에서 들리는 강태민의 목소리에 발걸음을 뚝 멈췄다.
“난 서하랑 이혼 안 해. 앞으로 그런 말 다시는 내 귀에 들리게 하지 마!”
강태민은 이를 악문 채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고 이내 유리가 산산조각 나며 부서졌다.
소파에 앉아 있던 주윤미는 잔뜩 굳은 얼굴로 이서하에 대한 혐오와 불만을 드러내고 있었다.
“네 아내가 다른 남자랑 놀아났다는 소문이 이미 서울 전역에 퍼졌어. 그런 여자랑 이혼도 안 하고 살겠다고? 이서하가 네 아이도 아닌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아서 강씨 가문의 후계자로 세우면 어떡할 거야?”
강태민은 눈앞에 놓인 이혼 신청서를 집어 들어 거칠게 찢어버렸다.
“서하를 찾았던 날, 이미 피임약을 먹였습니다. 앞으로도 전 서하를 건드리지 않을 거고 아이를 가질 일도 없습니다.”
잠시 멈칫하던 그는 냉랭한 말투로 계속 말했다.
“강씨 가문의 후계자는 나연이가 대신 낳아줄 겁니다.”
문밖에 서 있던 이서하는 손등의 핏줄이 도드라질 정도로 문손잡이를 꽉 붙잡았다.
‘강태민이 말한 사랑이라는 건 역겨울 만큼 기괴하네.’
밤이 깊어지고 찬바람이 스며들자 이서하는 책상 앞에 앉아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 명의로 된 강씨 가문의 모든 자산을 정리해 주세요.”
수화기 너머의 변호사는 의아해했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알겠습니다. 사단장님과의 이혼 절차도 이미 막바지에 들어갔습니다. 늦어도 열흘 안에는 이혼 승인 도장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이서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서둘러 주세요. 전 열흘 뒤엔 반드시 떠나야 합니다.”
통화를 마치려는 순간, 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강태민이 굳은 얼굴로 들어왔다.
“어디로 가겠다는 거야?”
이서하가 수화기를 꽉 쥔 채 입을 열려던 순간, 아래층에서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곧, 성나연은 문을 열어주려고 내려간 강태민에게 안기며 울먹거렸다.
“태민아, 우리 엄마가 수술한 이후로 계속 가슴이 아프대. 어떻게 해야 되지?”
강태민은 그녀를 안고 낮은 목소리로 달랬지만 이서하를 보는 눈빛은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도대체 왜 나연이 어머니한테 이런 심각한 후유증이 남은 거야? 수술할 때 대체 뭘 한 건지 똑바로 말해봐.”
이서하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내가 수술한 부위는 뇌야. 그런데 가슴이 왜 아픈지는 본인에게 직접 물어봐.”
그 말에 성나연은 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태민아, 바닷속 깊은 곳에 있는 용연초를 먹으면 모든 불편함이 완화된다고 들었어!”
잠시 숨을 고른 그녀는 결심한 듯 말을 이어갔다.
“이 선생님 말씀대로 엄마 증상이 수술과 무관하다면 내가 직접 바다로 내려가 약을 찾아올게.
나는 사랑하는 엄마가 아픈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
성나연이 돌아서려 하자 강태민은 그녀를 세게 끌어안았다.
“너 수영 못 하잖아. 아무 장비도 없이 바다에 들어가면 큰일 나.”
이내 그는 고개를 들어 이서하를 바라보며 이런 말을 내뱉었다.
“이서하, 나연이 어머니의 후유증은 네가 만든 거야. 그러니까 네가 대신 용연초를 찾아와. 속죄하는 셈 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