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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이서하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강씨 저택이었다. 애써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키려는 무렵, 거실에서 뭔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한편, 강태민은 거실에서 손에 들고 있던 화병을 바닥에 내던지며 화를 내고 있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그 인간들 찾아내. 감히 내 아내를 탐하려고 한 사람들이야! 만약 이 일이 밖으로 새어 나가기라도 하면... 난 소문을 제일 먼저 입에 올린 놈부터 죽일 거야.” 성나연은 그의 어깨에 기대어 여전히 나긋나긋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태민아, 혹시 이 선생님도 피해자일 수도 있잖아.” 그 말에 강태민의 표정이 굳어버리더니 주먹으로 유리 테이블을 세게 내리쳤다. “피해자든 뭐든 상관없어. 이미 일은 벌어졌잖아. 내가 어떻게 이미 더럽혀진 아내를 받아들일 수 있겠어? 지금 이서하는 죽은 자기 여동생이랑 다른 점이 없잖아.” 구석에 서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서하는 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방금 강태민이 내뱉은 말들은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힌 듯 숨조차 쉬기 힘들 만큼 고통스러웠다. 그는 단 한 번도 이서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묻지 않고 이미 그녀를 더러운 여자로 단정 지었다. 다음 날 아침, 이서하는 강태민이 마련한 어머니와 여동생의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식장 한가운데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건강하게 살아 있던 두 사람은 이제 검은 리본이 달린 흑백 영정 사진이 되어 놓여 있었다. 이서하는 방석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끊임없이 향을 피웠다. 그래야만 마음이 조금이라도 가라앉을 것 같았기 때문에. 아침 8시부터 점심 12시까지 장례식에 찾아온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어머니와 여동생을 성대하게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던 강태민조차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서하는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곧 산골 할 시간이네.’ 텅 빈 장례식장을 바라보던 그녀는 혼자서 어머니와 여동생의 유골함을 품에 안고 밖으로 나섰다. 그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신문사 기자들이 이서하의 주위에 몰려들었다. “이 선생님, 어제 골목에서 남자 몇 명에게 강간을 당했다는 소문이 사실입니까? 이 일, 사단장님은 알고 계시나요?” “이 선생님, 강제로 당한 겁니까? 아니면 자발적이었나요? 사람들 말로는 선생님이 먼저 유혹했다던데... 혹시 여동생처럼 본성부터 방탕한 사람입니까?” “이서하 씨, 어머니는 보험 사기로 차에 치여 죽고 여동생은 남자들과 어울리다 수치심에 자살했죠? 이제는 본인까지 남자랑 어울리고 다니는 의도가 뭡니까? 혹시 집안 자체가 원래 그런 집안입니까?” 비웃음과 조롱이 섞인 질문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지자 이서하는 핏발이 선 눈으로 그들을 노려봤다. “당장 그 더러운 입 다물어요. 제 가족의 사정을 당신들이 입에 올릴 자격은 없습니다!” 이서하가 자리를 떠나려 하자 누군가 그녀의 옷깃을 거칠게 다시 끌어당겼다. “이 선생님, 혹시 찔리는 거라도 있습니까? 남자랑 몰래 만난다는 소문은 이미 서울에 퍼졌어요. 동생이랑 똑같이 천박하게 행동하시다가 사단장님한테 쫓겨날까 봐 두렵지 않나요?” 이서하는 비틀거리다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고 그 바람에 손에 들고 있던 유골함을 떨어뜨렸다. 혼란 속에서 누군가가 유골함을 발로 밟았고 뚜껑이 열리며 안에 담겨 있던 재가 바닥에 흩어졌다. 이서하는 정신이 나간 듯 기어가 떨리는 손으로 그 재를 주워 담으려 했다. “비켜... 다 비키라고! 다 꺼져!” 하지만 기자들은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어머니와 여동생의 유골 위를 계속 짓밟았고 이서하는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제발... 우리 엄마랑 동생 재는 밟지 말아주세요. 부탁이에요.” 그러나 그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고 카메라 렌즈는 모조리 처참한 몰골을 하고 바닥에 주저앉은 이서하를 향해 있었다. 이서하가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순간, 누군가 그녀를 세게 밀쳤다. 그녀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뒤로 밀려났고 이윽고 후두부에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때, 사람들 틈에서 누군가가 비명을 질렀다. “피! 피가 너무 많아요.” 곧, 군용차 여러 대가 천천히 다가왔고 차가 완전히 멈추기도 전에 강태민이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지금 뭐 하는 짓들이야!” 그는 피바다 속에 쓰러진 이서하를 발견하고는 본능적으로 다가가 그녀를 안으려 했다. 하지만 쭉 뻗은 손은 결국 허공에서 멈췄다. 이내 강태민은 고개를 돌려 비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서하를 병원으로 데려가.” 그러자 비서는 난처한 듯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제가 안고 가면 좀 그렇지 않나요? 차라리 사단장님이 직접 안고 가시는 게...” 비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태민은 등을 홱 돌리더니 이런 말을 내뱉었다. “난 더러운 건 딱 질색이야.” 그 한마디에 이서하는 무거운 돌덩이가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느낌에 두 눈을 감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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