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다시 눈을 떴을 때, 이서하는 익숙한 병실에 누워 있었다.
여전히 손목에서는 강한 통증이 밀려왔고 그제야 그녀는 자신의 손목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지만 오른손은 아프기만 할 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이게 왜 이러지?’
뭔가 이상한 느낌에 눈물이 터져 나온 이서하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채 어떻게든 침대에서 내려오려 했다.
그 순간, 소리를 들은 강태민이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달려와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서하야, 미안해. 네 손목은... 강아지한테 물려서 힘줄이 끊어졌어. 이제 아마 수술용 칼은 못 잡을 거야.”
이서하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손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어보려 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던 손, 의사로서의 전부이자 생명 같았던 손을 이렇게 허무하게 잃었다.
‘내가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 이후로 한동안 강태민은 병실을 떠나지 않았고 세면부터 식사까지 모든 걸 직접 챙겼다.
이서하는 병원에 꼬박 일주일을 더 머문 뒤에야 퇴원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이서하는 창밖만 바라볼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강태민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부드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서하야, 내일 네 엄마랑 여동생을 위한 장례식을 준비했어. 사람들 다 불러서 정성껏 보내드리자.”
그 말에 굳어 있던 이서하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비록 화는 너무 나지만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라 막 뭐라 하려는 순간, 강태민의 폴더폰이 울렸다.
이내 수화기 너머로 성나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태민아, 우리 엄마가 가슴이 또 아프대. 나 너무 무서워. 병원에 와서 나랑 같이 있어 주면 안 돼?”
강태민은 즉시 브레이크를 밟고는 심각해 보이는 얼굴로 이서하를 바라봤다.
“서하야, 넌 여기 내려서 혼자 가. 나연이가 무섭다고 해서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아.”
이서하는 비웃듯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
“네가 의사야? 네가 가면 치료라도 해 줄 수 있어?”
“이서하, 나연이 엄마가 이렇게 된 건 네 수술이 잘못됐기 때문이야. 그래서 난 네 죄를 대신 씻어 주는 거라고.”
말을 미친 강태민은 그대로 차에서 내려 조수석 문을 열었다.
“내려.”
‘아, 사랑을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연기할 수도 있구나.’
이서하는 그저 헛웃음이 나올 뿐, 아무 반박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그녀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강태민은 망설임 없이 차를 몰고 떠났다.
텅 빈 거리에 홀로 남은 이서하는 께름칙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은 외곽에 가까웠고 요즘 치안도 좋지 않아 건달들이 자주 어슬렁거리는 곳이었다.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고 이서하가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골목 어귀에서 몇 명의 사내들이 걸어 나왔다.
점점 불길한 예감이 든 이서하는 곧장 방향을 틀어 달아나려 했지만 누군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야, 네가 요즘 소문 자자하게 난 학생의 친언니 아니야? 동생이 그런데 언니 실력도 괜찮겠지?”
이내 한 남자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이서하는 뿌리치려 했지만 다친 손이라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제가 누군지 아세요? 제 몸에 손대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사내들은 그녀의 발악이 우스운지 더 크게 웃었다.
그리고 그대로 이서하를 끌고 골목 안쪽으로 향했다.
“오늘은 우리도 좀 즐겨 보자.”
이서하는 목이 찢어지도록 소리쳤지만 돌아온 건 사내들의 호탕한 웃음소리뿐이었다.
“오늘은 목이 쉬도록 소리 질러도 아무도 안 올 거야.”
곧, 누군가 그녀의 옷을 거칠게 벗기기 시작했고 이서하는 이를 악문 채 남자의 손을 있는 힘껏 물었다.
그리고 빠르게 몸을 일으켜 앞으로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잠시 뒤, 놈들이 다시 따라붙었다.
“여긴 외곽이야. 뒤에는 호수밖에 없어.”
그 말에 이서하는 호수를 가만히 바라보다 망설이지도 않고 몸을 던졌다.
차가운 물이 순식간에 온몸을 감싸자 의식은 다시 흐려지는 것 같았고 남자들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내가 망가뜨리라고 했잖아! 이렇게 죽이면 어떡해? 이러다 진짜 큰일 나면 누가 책임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