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전화를 끊고 강유나는 침실로 돌아와 그동안 심서원이 자신에게 준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자기와 꼭 닮은 인형, 둘이 함께 본 영화 티켓, 어딘가 여행 갔을 때 사 온 엽서, 그리고 두 사람의 이름이 박혀 있는 결혼반지까지...
그렇게 한때는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던 것들을 모두 쓰레기통에 던져 넣자 순간 온몸이 한없이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다시 거실로 돌아왔을 때 강유나는 서재 창가에서 한껏 얽혀 있는 심서원과 하시안을 보게 되었다.
전생에서도 이 장면을 본 적 있었다.
그때는 심서진과 형수가 꽤 사이가 좋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진실을 알고 난 지금 우스울 뿐 마음은 칼로 도려내듯 아팠다.
하시안이 그녀를 발견하자 도발적인 미소를 띠고는 숨을 끊어질 듯 토해냈다.
“힘이 너무 세요, 시안이 더는 못 버티겠어요.”
심서원은 하시안의 허리를 움켜쥔 채 미친 듯이 움직이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안 돼. 지난주에는 너랑 세 번밖에 못 했잖아. 이번에 다 채워야지.”
강유나는 더 듣지 않았고 조용히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가 잠든 척 침대에 누웠다.
잠시 뒤 문이 열리고 심서진이 들어왔다.
그녀가 자는 모습을 보자 그의 미간이 스르륵 풀렸고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반대편 자리에 누웠다.
다음 날, 강유나는 안약을 들고 검사센터로 갔다.
그리고 돈을 더 내며 검사 결과가 빨리 나올 수 있도록 부탁했다.
두 시간 후.
보고서에 적힌 ‘장기간 사용 시 시력 심각하게 손상’이라는 문구를 본 그녀는 쓴웃음을 삼켰다.
그 후 이틀 동안 심서원은 줄곧 심서진의 신분으로 하시안과 붙어 지냈다.
강유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태연하게 출국 준비를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오후.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거실에서 서로 입을 맞추고 있는 두 사람과 마주쳤다.
하시안은 그녀에게 심서원 몰래 도발의 눈빛을 보내며 겉으로는 순한 척하며 말했다.
“언니, 서진 오빠가 오늘 밤에 제 생일 파티를 열어줬어요. 언니도 같이 와요.”
강유나는 단호하게 잘랐다.
“나는 안 갈게.”
오늘은 강유나의 생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심서원은 출장이라며 핑계를 대고 비서에게 아무거나 골라 선물하게 한 게 전부였다. 그러면서 심서진 행세하며 하시안의 생일은 이렇게 성대하게 챙겨주고 있었다.
‘사랑과 무관심의 차이가 이렇게까지 선명할 수가 있구나.’
하시안은 금세 눈가를 붉히고 입술을 깨물며 억울한 표정으로 심서원을 올려다보았다.
심서원은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리며 강유나를 나무랐다.
“제수씨, 시안이 어쨌든 제수씨를 대신해 18년이나 효도를 다 했잖아요. 정성껏 초대한 건데 왜 거절하는 거죠?”
강유나는 제수씨라는 말에 비웃음이 스쳤다.
“오늘은 제 생일이기도 한데요.”
잠시 멈칫했으나 심서원은 금세 차갑게 돌아왔다.
“서원이가 출장 전에 값비싼 목걸이 선물하지 않았어요? 제수씨, 이렇게 사소한 걸로 따지면서 분위기 망치지 마세요.”
그 순간, 강유나의 마음은 완전히 꺼져버렸다.
그녀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갈게요.”
생일파티는 화려한 요트에서 열렸다.
본래도 아름다운 배는 온통 새롭게 꾸며져 있었고 선체에는 큼지막하게 ‘시안호’라고 적혀 있었다.
심서원은 하시안 곁에서 손님들을 맞고 있었고 그 눈빛은 사랑으로 가득했다.
강유나를 보며 그는 공손하게 제수씨라고 인사했다.
시선을 내리며 강유나는 비웃음을 감추고 구석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모든 게 순조롭게 지나가는 듯했다.
그 순간, 하시안이 무대 위에서 감사의 말을 시작하자 그 뒤의 프로젝터에서 갑자기 그녀의 사적이고 은밀한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현장은 삽시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언니가 저를 미워하는 거 알아요. 하지만 오늘은 제 생일이고 여기 있는 사람도 전부 제 친구들인데 언니가 어떻게 저한테 이럴 수 있어요!”
강유나는 심서원의 얼음장 같은 시선을 느끼고 떨리는 마음을 애써 눌렀다.
“나 아니야. 나는 그런 적 없어.”
하시안은 심서원의 품에 안겨 오열했다.
“언니, 제가 언니가 몰래 영상 찍는 거 다 봤어요. 부모님도 돌려줬고 심씨 가문의 혼약도 양보했잖아요. 근데 어떻게 이래요? 제가 그렇게도 밉다면... 좋아요! 제가 죽을게요. 언니 눈앞에서 사라져 줄게요.”
강유나가 말릴 새도 없이 하시안은 심서원을 밀치고 그대로 바다로 몸을 던졌다.
순간 심서원의 얼굴빛이 확 변했고 망설임 없이 그녀를 따라 바다로 뛰어들었다.